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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Nov 10. 2019

직장 생활, 사심(私心)을 버리니 본질이 보였다

좀 손해 보아도 괜찮아



브런치에서 '스테르담' 작가님의 '사심(私心)이 직장생활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글을 읽고 깊은 공감을 했었다.

(그 글은 아래에)


https://brunch.co.kr/@sterdam/1037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 그게 마음이 편해."


처음엔 공감이 되지 않았던, 존경하는 임원분의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이 담긴 이 글을 읽으며, 요즘 내가 회사에서 유독 힘들었던 이유에 대해 성찰해 보게 되었다.




최근 회사의 인원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내가 속한 본부에도 경력직 직원이 계속 입사하고 있다. 물론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이기도 하지만, 과도기에 이런저런 사유로 인한 직원들의 씁쓸한 퇴직 때문이기도 하다.


한 회사만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나에 비해, 경력직으로 입사한 내 또래의 직원들은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 네 번째 이직으로 우리 회사에 왔다. '이직 한 번이 어렵지' 라는 말은 진짜인 걸까.


이직이 늘 막연했고, 가끔 채용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면서도, 헤드 헌터의 전화는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친절하고 당차게 받으면서도, 이직이라니. 내 인생에 과연 일어날까 싶은 이벤트였다.


그래서인지 통계적으로는 내가 희귀한 쪽임이 분명함에도, 나는 내 또래의 경력직 직원들이 신기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어딘가 비슷한 느낌의 '영혼 없음'이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어렵긴 한데, 이 영혼 없음은 나쁜 뜻이 아니라, 조직에 원래 있던 사람처럼 녹아드는 것, 조금 사무적이지만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사에게 매우 잘 맞추며, 적당히 가깝게,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잘 지내는 점. 업무는 업무로 하고 왠지 워라밸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프로페셔널한 모습. 아, 회사는 회사일 뿐이지. 감정과 열정을 다 쏟는 건 아마추어야. 이런 느낌.

(물론 '사람 바이 사람'이지만 나에게는 관통하는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문득 나도 이직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 '내 회사' (내 회사도 아닌데) 라는 마음보다는 그냥 직장, 회사는 회사, 이런 마음으로 조금 쿨하게, 적당히 마음을 두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회사에 후배도 많이 생기고, 다양한 커리어와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기존에 없던 스트레스가 생겼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방금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아까 그 말 괜히 했나? 같은 '남을 신경 쓰는 마음', 그리고 묘한 경쟁 심리나 경계심 같은 감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이 스트레스가 회사 생활에 방해가 될 만큼 나를 흔들기 시작할 무렵, 이 모든 것이 '사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심' 때문에 슬럼프가 왔다던 스테르담 작가님의 글에서, '사심'의 본 뜻은 '제 욕심을 채우려는 사사로운 마음'이라 했는데. 전에 없던 스트레스의 원인은, 전에 없던 욕심 때문이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저 사람보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고 저 사람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


그런 처음부터 '불행'이 예정된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스스로 자존감을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 라는 말은 사심을 버리라는 뜻이지 무조건 손해를 보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나 혼자 '손해'라고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항상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보상을 바라고, 나여야 할 것 같고, 인정받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 그런 사사로운 마음에서 벗어나니 정말로 마음이 편했다. 조금만 더 나아갔다간 시기, 질투하는 마음에 부질없는 험담을 하고 다니는 내가 정말 극혐 했던 지경에 까지 갈 뻔했다. 그럼 두고두고 내 못난 모습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이라는 책에는 '운의 이치'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한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와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니시나카 변호사는 온갖 송사를 담당하며 만난 자신의 객관적인 클라이언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 좋은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다.


운 좋은 사람은 덕을 쌓은 사람이다.


덕을 쌓은 사람은 곧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니, 개인이 자기 운을 개선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히 운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이라 했다. 아무리 봉사와 헌신을 해도 교만하고 생색을 내면 미움을 사게 되고, 조직에 운을 쌓으려면 유능한 사람보다 믿음이 가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운 좋은 사람'의 특징이었다. 니시나카 변호사가 말하는 운 좋은 사람의 특징은 이러했다.


슈퍼마켓에서 식품을 살 때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을 사는 사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쌓여 슈퍼마켓이 손해를 보면 결국 서비스가 나빠지고 소비자들도 손해를 볼 테니, 기왕이면 나부터 먼저 해결해 주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택시를 타면 항상 "거스름돈은 됐어요"라고 하는 사람.


조직에서는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왜? 라는 사심 어린 욕심보다는 이왕이면 나부터 먼저 해결해주자는 마음이 결국 덕을 쌓는 일이고, 그 덕은 결국 좋은 운을 가져온다.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사심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후로 확실히 스트레스가 줄었다. 남과 비교하며 나를 괴롭히는 일도 줄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기준이 '남 보다 더'는 아닌 것이 되었다. 일의 본질과 그 안에서 일하며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사심을 버리니 본질이 보였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직장 생활 그 안에서 나의 일을 하는 것. 스스로 의미를 찾는 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경험의 폭을 확장하고 최대한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나 스스로를 데려가고자 노력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덕을 쌓고 있다고 생각해둔다. 이 덕이 언젠가 좋은 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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