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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Jul 15. 2019

없는 문제 만드는 CEO vs 행복회로형 CEO

Feat. 회사에 중간은 없다.



없는 문제도 만드는 CEO와 행복회로형 CEO.


써놓고 보니 극단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직장 생활 10주년을 앞두고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이 글의 소제목처럼, 회사에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없는 문제도 잘 만드는 CEO'와 '행복회로를 잘 돌리는 CEO' 두 분을 가까이서 경험하게 되었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기업문화 담당자에게는 누가 더 좋은(?) CEO일까?


물론 '좋은' 이라는 말에는 정말 많은 스펙트럼과 의미가 담겨있지만 '일하기 좋은'에 우선 한정한다면?


얼핏 보면 문제를 만드는 CEO 보다는 행복회로에 특화된 CEO가 일견 편안해 보인다. 실제로도 3년 가까이 '문제 만들기'에 특화된 CEO와 일하며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날들이 많았다. (이렇게 표현하니 별일 아닌 듯 하지만 그땐 정말 이러다 정신병 걸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없는 문제도 만드는 CEO란 어떤가 하면, 모든 순간이 위기다.


그 유명한 드라마 '도깨비'의 날이 좋아서, 로 시작하는 명대사가 떠오른다.

그 대사라 함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네 잘못이 아니다.


인데,

없는 문제도 만드는 CEO 버전으로 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문제(=위기)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 내 탓(=CEO탓)이다.



갑분... 도깨비...   갑분... 위기





갑자기 사원이나 대리 직원이 퇴사하면 저 직급자 직원들의 이탈이 문제이니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고 직급자가 퇴사하면 직원들에게 로열티를 심어줄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회사가 사옥 이전을 앞두고 있을 때는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의 마음으로, 새로운 대륙으로 우리가 가야만 하는 비전과 꿈을 만들어야 했고, (그냥 이사 가는 거 아닌가?)


소소한 회사 체육대회 이벤트 경품 선정 문제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 순간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했다. (실제로 이 CEO와의 회의 시간에 회사 체육대회 경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4차 산업혁명 이야기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을 경험함)


실로 대단한 분이었다.

그 열정이 때로는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삶이 부럽지는 않았지만 아! 저런 로열티라니, 나도 한 번 가져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매 순간 전쟁을 이끄는 장군, 부하를 이끄는 장수에 빙의하여 전장을 지휘할 수 있는 그 에너지가.




그렇게 3년 가까이 한 번도 지친 내색 없이 정말 불태워 일했던 CEO는 홀연 해외 법인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발령 일주일 전에 알았다. 멘붕 속 CEO 교체 후 새로 부임한 CEO는 그야말로 회사에 대해, 우리 회사의 전문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분이었다. 지난 CEO가 파격 인사였다면, 이번 CEO는 누구나 예상할법한 예정된 인사였달까?


오랜 시간 조직에 계셨기 때문에 이미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CEO 교체에도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사람들은 새로 오신 CEO의 성향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회사가 언제 위기였나 싶게.


새로 오신 CEO는 그룹 내에서도 인품이 훌륭하신 것으로 유명했고(이런 임원 거의 없음), 직원들에게도 인간적으로 친근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우리가 저녁 6시 넘어서 자리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왜 안가? 무슨 일 났어?" 라고 농담하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는,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여유 넘치는 CEO.


이제 위기는 오지 않을 것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이 좋으냐고 하면 선뜻 대답이 안 나온다.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면 그때는 내가 이 일을 왜 하느냐에 대한 강력한 자각이 있었다. 물론 위기니까.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회사가 사옥을 이전하며 새로운 비전을 만들라니 이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소린가 싶었지만, 꾸역꾸역 기업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나는 나름대로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때로 너무 거창하여 민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옥 이전 기념 이벤트'가 아니라 '회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새로운 꿈을 그려보고 있다'는 마음가짐, 단순한 물리적 이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그리고 이 변화는 누군가가 쥐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찾고 만드는 것이라는 동기부여. 손발이 오그라드는 깨달음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시절 나는 분명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진심으로 느끼고 깨닫고 있었다.




되돌아 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나는 분명 배우고 성장했다.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다"라는 세상에서 제일 식상한 문장으로도 표현될 수 있겠으나 직장 생활에서 가장 많은 성취감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요즘 몸과 마음이 편하다 보니 가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변탠가?)



제현주 님의 저서 '일하는 마음'에 보면 이런 고백이 나온다.


이 책의 초고를 읽고 난 후 출판사 어크로스의 김형보 대표님이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보이는 글"이라고 평했습니다. 마음을 읽힌 듯해서 조금 당황했고 부끄러웠습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 왜 부끄러웠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경쟁'이나 '승자독식' 같은 말이 당연한 규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나의 치열함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언제나 내가 일하기를 좋아하고, 기왕이면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조금쯤 부끄러워하며, 그런 내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흘러나오기 마련이고, 독자 역시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아예 이렇게 고백하고 시작하는 게 낫겠습니다. (...)

네, 저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는 좀 다른데, 두려운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편안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지 못하는 일'에 몸을 던지길 좋아하고, 그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또 한 뼘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현주 님처럼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몰래 숨어서 이 글에 엄청나게 공감하고 위안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일 하기 싫은 사람'보다는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때론 욕심 같기도 하고 또 세상을 힘들게 사는 길인 것 같아 쉽게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순간이 위기'였던 CEO 곁에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머리에 쥐가 나게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비판적 낙관주의자'가 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도 회복탄력성을 갖는 법.


그래서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항상 강렬한 위기 의식에 나를 몰아세워도 이내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담대한 희망을 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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