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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Nov 17. 2019

버티는 직장인의 위엄과 위험

연못 속에서도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며칠 전, 회사 임원분과의 기자 인터뷰 일정을 바꿀 일이 생겼다. 본의 아니게 두 번째 변경이라 담당 차장님께 전화를 드리기가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전화를 받은 차장님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았다.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하셔서 몸이 안 좋으신 줄 알았는데, 상상도 못 한 대답을 들었다.


"아, 제가 지금 부친상이라.."


순간 내가 아는 부친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한 번에 다가오지가 않았다. 부친상이라니.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니. 부모의 죽음이라는 것은 아직 그 황망함이나 슬픔의 깊이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라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터뷰 일정 변경은 제가 직접 전화해서 알아서 할 테니 절대 신경 쓰지 마시라고 하며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절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하고 다 처리되었음을 알리고, 정말로 신경 쓰지 마시라고, 저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겠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그 경황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차장님이 전화를 끊기 전, 인터뷰 일정이 언제로 바뀌었다고 하셨죠? 라며 '일'을 챙기는 순간이었다.


본능적으로, 아니면 습관적으로 나온 말인 것 같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인터뷰 일정이 문제냐며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은, 나도 모르게 '일'을 챙기고 있는 차장님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다 같은 '버티는 직장인'이니까.






버티는 직장인으로서 나는 이제 곧 입사 1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 회사에서 10년이라니. 반듯하게 이름이 새겨진 10주년 기념 만년필이나, '회사를 위해 애써주신 헌신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같은 감사장을 받는 일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 곧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프롤로그에 쓴 글에서 처럼, 막연한 목표 '직장 생활 10년만 하자'라며, '직장이라는 연못 탈출'을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퇴사가 유행인 것처럼, 퇴사를 꿈꾸는 사람이나 이미 퇴사한 사람, 퇴사의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점에도 브런치에도 넘쳐 났지만,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아직 퇴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준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위험을 감수하기 전에 기회비용을 열심히 생각하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한 없이 신중해지는 사람(=쫄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못 밖 세상이 궁금했다. 일단 나가볼 용기는 없었지만 연못 밖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기 위해 '다른 무엇'을 하나씩 시도해 보며 그 과정을 글로 썼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뜻밖의 행복을 만났다. '직장인 사이드 프로젝트의 순기능'이라는 글에서 쓴 것처럼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한껏 의식하며 '책임감 있는 글쓰기'를 하는 행복,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의 인생에서 내 뜻대로 완결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세상에 내놓는 순간 더는 나만의 것이 아니고 타인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런 기대와 가능성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행복은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온전한 행복'이었다.
 
또 한 가지, 브런치에 글을 쓰며 '직장인으로서의 나'가 100이었던 나는 이제 '직장인으로서의 나'가 70,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가 30 쯤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 이야기는 '더 많은, 단단한 나를 만드는 일'이라는 글에서 썼다. 회사에서 자꾸만 소모되고 마모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그저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렇게 갈아 없어지는 시간이 70이지만 나머지 30은 온전히 내 것이니까 괜찮다는 생각, 그런 '단단한 나'를 더 많이, 30이 아니라 40, 50까지 만들 수 있다면 더 괜찮은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방황하지만, 괜찮아’ 라는 챕터에 쓴 글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나는 '일 하기 싫은 사람'보다는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하는 나'가 70이든 50이든 나는 영혼 없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일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일하는 기쁨과 성취 속에서 무엇보다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숨 가쁘게 아가미를 내밀며 연못 탈출을 꿈꾸는 잉어가 아니라, 연못 속에서도 자유롭게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여전히 직장 생활 10년만 할 수 있을지, 그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정해진 것도 없고,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면서,


회사라 괜찮다가, 그만두고 싶다가 하는 나.
섣불리 퇴사도 못하면서 자꾸 다른 꿈을 꾸는 나.
직장 생활 10년만 해야지, 결심했지만 여전히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
그렇게 희망과 좌절을 오고 가며 여전히 답을 찾는 나.
 
이런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기획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이런 '자기 긍정'의 과정을 담은 글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도 '자기 긍정'의 힘을 주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기획의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럴 수 있다면 그저 소모되는 줄만 알았던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부친상 중에 나도 모르게 '일'을 챙기던 수화기 너머의 차장님께 나는 꼭 말해주고 싶었다. 일요일 밤 내일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고, 월요일 더 붐비는 지하철에 피로한 몸을 싣고, 자주 퇴사를 꿈꾸지만, 그래도 묵묵히 성실히 내 몫의 일을 하며 버티는 직장인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버틴다는 것은 위험하지만 위엄 있는 일이다. 왜 그렇게 버티느냐고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밥벌이는 하찮지 않다. 내 몫의 일을 해내며 돈을 버는 것은 어렵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위엄 있는 일이니, 버티는 지금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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