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은 Nov 14. 2020

웹소설이 날아갔다

올해 초 미국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는 그때부터 '쓸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로운 환경이 주는 자극에 도움을 얻어 새 책을 써볼 요량이었다. 국 정착기? 영어 배우기? 이방인으로 사는 일? 아무리 주변을 살피고 머리를 굴려봐도 해외살이와 관련해 즐비한 다른 이야기들과 차별화된, 신선하면서도 흥미롭고 거기에다 품격까지 갖춘 글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픽션을 써보기로 했다. 그동안 현실을 기록하는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로서만 글을 써왔기 때문에 픽션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해본 적이 없다. 픽션이란 무언가 상당한 경지에 이른, 예술적이고 고차원이며 인문학적 작업이라는 경외감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션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종류의 글쓰기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까짓것 어차피 머나먼 미국 땅까지 와 있겠다, 무엇이든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써보면 어떠랴 하는 치기가 생겼다.


으로 문학을 배운 적도 없고, 상징과 수사를 활용한 깊이 있는 작품을 써 내려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일단 로맨스 웹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10년 전 결혼 후 봉인 및 박제된 나의 연애 세포를 끌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작가의 첫 작품은 자신의 경험담을 여러모로 각색하게 된다고 하던데, 과연 나 역시 그랬다. 내게 저장된 연애의 기억들을 떠올리느라 괴롭고 민망하고, 때때로 달콤했다. 혹은 감수성이 흘러넘치던 10대 때 본 순정만화, 드라마, 영화 속의 각종 장면들도 속속 소환다.


그렇게 아이들이 잠든 밤, 상상 속 혼자만의 세계에서 세상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되었던 나는 불과 한 달 사이에 원고지 400여 장에 이르는 분량의 글을 써 내는 기염을 토했다. 온갖 디테일과 등장인물의 복잡 미묘한 심리까지 세세하게 써 내려가느라 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조된 기분으로 새로운 사건의 전기를 만들어내고자 고민하던 차, 나는 결국 그저 아름답기만 한 로맨스 소설 쓰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에 빠져 세상을 달달하게만 바라보던 예전의 내가 볼 수 없던, 우리 사회의 민낯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설정한 여자 주인공은 자아가 강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사회적 공명심(公明心)을 가진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이상향에 가까웠다. 그런 캐릭터가 10대와 20대 시절에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로 소구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30대를 넘어 40대에 접어든 지금, 그런 여성 캐릭터의 삶이 절절한 사랑과 안온한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아름다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아내, 며느리 등 다양한 역할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생의 이벤트를 맞이하면서 엄마, 양육자의 삶에 힘겨워할 것이다. 사랑하던 일과 직장을 잃게 되거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혼란을 겪을 것이다. 젊은 자신이 공헌했던 사회로부터 도태되거나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는 일 경게 될 것이다. 또렷하던 자아는 쪼개지고 흩어져서, 원래의 반짝반짝 빛나던 자신을 찾는 것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생의 해답은 사랑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인생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을 것이다.


이쯤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신나게 써 내려가던 소설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대로 글을 더 쓰면 로맨스 웹소설이 아니라 사회 고발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신의 계시라도 되는지, 글쓰기를 멈추고 난 2주 후쯤 미국에서 새로 구입했던 노트북먹통이 되었다.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노트북은 영영 켜지지 않았다. 미국 코스트코에서는 가전제품 구입일 90일 이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환불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즐거웠던 로맨스 웹소설은 미완 채로 세상에서 증발했다. 어쩌면 꿈꾸듯 달콤한 사랑이란 신기루처럼 예고 없이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라는 것, 그래서 더 애달픈 기억임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웹소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날아가고, 나는 다시 내 앞의 쌉싸름한 현실 마주했다. 그래도 날아간 웹소설에 연연하지 않는 내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새 노트북을 샀고,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쌉싸름한 맛이 더 낫다 싶은 걸 보니 내가 진짜 어른인 건가 싶다.




이전 08화 걱정 말아요, 그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