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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Apr 06. 2021

[생각 2]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어느 시절이 제일 행복했나요?

 

 상사가 뜬금없이 내 인생 중 어느 시절이 제일 좋았냐 물었다. 망설이다가 대학생 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답했다. 철이 들지 않아도 아직 괜찮다 해주는 나이었고, 직접적인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시기였다. 게다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전공을 골라서 들을 수 있는 선택권도 있으니 그보다 더한 지상낙원은 없었다. 덧붙여 전공에 대한 애정을 조금 늘어놓은 뒤, 반대로 상사에게 물어보았다.




"언제가 제일 좋으셨어요?"



"이젠 잘 모르겠어. 지금 행복하지 않은 건 확실해."




그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물었을 때 '아니'라는 대답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왜?

한 번 더 물으니 이때다!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조금 쓰라린 피부 위에 얹힌 마스크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무례

기약 없는 전염의 종말

직장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투명함

불안한 만큼 늘어가는 집값의 자릿수

용이 났다던 개천의 말라비틀어진 바닥

미세먼지로 수놓은 하늘




 주욱 나열하고 나니 깨달았다. 요즘 내가 생각보다 여유 없이 살았구나. 오늘 저녁은 칼퇴해야겠다. 차 마시면서 책도 읽고 일기에 불만을 전부 새겨놓고 털어야지. 근데 오늘 칼퇴는 할 수 있는 건가? 오늘만큼은 느긋한 저녁을 즐기고 싶은데.




 잠깐의 과거 여행으로 지금의 삶을 되돌아봤고, 현실은 아직도 뿌옇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핸드폰에 띄워진 카톡 팝업에는 지인의 지인이 클럽에 다녀온 뒤 올렸다던 동영상에 대한 질타를 나누는 카톡과, 보증금을 거의 날린 뒤 간신히 버티던 가게를 접는다는 다른 지인의 카톡창이 나란히 떠있었다.










 다들 과거 여행을 하고 난 뒤, 제일 좋았던 본인의 그 시절과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 사람에게 말한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야."




그래. 정말 그랬다.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로운 줄 알았던 지난 날 중 생각보다 좋을 때가 많았다. 그럼 뭐해. 지금 현실은 시궁창 직전인데.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내 자리 하나 못 찾고 계속 수건돌리기 술래를 하는 기분이야. 이렇게 고민하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또 똑같이 말할 테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야."




다 그때가 좋다고들 한다. 정작 그 자리를 지나갈 때는 나만 가시밭길을 걷는 사람 같아서, 발이고 마음이고 따끔따끔한 기분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도 말이다. 인생은 가면 갈수록 최악밖에 남지 않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남은 인생이 절망적이기에 급하게 행복 회로를 돌렸다.




아니야. 어제 자기 전 집사 친구가 보내준 고양이 꾹꾹이 모습이 귀여워서 행복하게 잠들었잖아. 오늘 점심은 맛있는 뼈해장국을 먹었어. 오늘은 회사에서 큰 사건 없이 평온한 하루를 보냈는 걸! 이 정도면 행복한 축일 거야. 그럼 그럼.... 그러겠지?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조금 다른 쪽으로 행복 회로를 돌렸다.




아니야. 행복을 너무 가까이 봐서 그럴 거야. 렌즈를 너무 가까이서 보면 어느 순간 상이 뒤집혀 보이는 경우가 있으니 인생도 그럴 수 있어.



개인적으로 무교이지만, 사람을 망각의 동물로 창조한 모든 신에게 감사를 빌었다. 그저 10년 뒤의 내가 나를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나온 이 길이 너무 돌아왔거나 아팠던 길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년 뒤라도 매끈하고 화사한 꽃길처럼 보였으면 그 과거 여행만큼은 기분이 둥실둥실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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