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환청에 시달렸다. 알람이 전부였던 시공간에 어지간히도 익숙해졌나 보다. 사람이 많은 곳은 근처에도 가기 싫었고 타인과 살갗이 닿는 것조차 혐오했다. 예전에는 일부러 북적이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바뀐 것을 보면서, 인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시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 나와서 마냥 좋기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퇴사하고 자꾸 몸이 아팠다. 퇴사하면 드라마틱하게 건강해지고 피부가 탱탱해지고 예뻐질 줄 알았는데. 퇴사테틱이라는 단어도 있던데 도무지 효과를 알 수 없었다. 나만 왜 이러냐며 불퉁불퉁 투덜거렸다. 사실 스스로 몸 관리를 잘하고 있지 않았는데, 허리 물리치료와 요가 레슨만으로는 부족한 몸이었다.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쉬면 될 거라고 믿었다.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발전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브런치에서 간호사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간호사 출신의 마케터였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병원을 나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스타트업에 취직하여 마케터가 된 사람. 너무 부럽고 멋있었다. 내 지금의 시간들을 먼저 겪은 사람 같아서 나에게 유익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뜸 이메일로 짤막한 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보냈다. 선뜻 답변을 해주신 덕분에 두세 번 가량 연락이 오갔고, 꽤나 자세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삶의 방향이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고 즐겁고 재밌고 신기했다.
따뜻한 조언들이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병원 독’이라는 단어였다. 퇴사 후 아파서 뭘 못하고 있다고 말하니 병원 독이 아직 빠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독이라니, 조금 웃겼지만 맞는 표현이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하게 쉬며 놀아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몰랐지만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다. 지금은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친한 친구가 되었으니 사람 인연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미국에 놀러 갔을 때 언니한테 들었던 말도 울림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피어의 벤치에서 갈매기 떼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언니, 나 아직도 가끔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병원에서 일할 때처럼 그러는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실망스러워. 시간이 더 지나면 나아질까?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병원에 엮여있는 것 같아서 짜증 나. 언니는 안 그래?”
“나도 그랬어. 고작 한 달 일했지만 나도 아직 그럴 때가 있어.”
“언니도 그래? 하, 대체 얼마나 오래가는 걸까. 아는 분이 이거 병원 독이 쌓인 거래. 난 세상에는 꼭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이 있다고 생각해. 병원이 나한텐 그랬고. 누군가에게는 할 만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굳이 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와하하, 병원 독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수민아, 나도 그래.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겐 그랬어. 아무리 짧았어도 해보지 않은 것과 조금이라도 해본 것은 다르더라. 지울 수 없는 경험이야. 그래도 좋은 경험들로 덮어 나가야지.”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커리어나 능력은 나를 표현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로 했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먹고 자고 즐기면서 나도 곧 퇴사테틱을 누릴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젊음이 주는 한시적인 고운 피부를 누렸는데 다시 누릴 수 있었다. 그때처럼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3시간만 자도 피부 속에서 광채가 느껴지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리워하던 피부를 노력을 통해서나마 스물일곱 살에 얻게 되니 정말 기뻤다. 물론 지금은 다시 원상 복귀했지만.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전반적인 신체 건강도 돌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보온과 혈액순환은 평생의 숙제였다. 여름에도 집안에서 수면양말을 신고 뜨거운 물로만 샤워했다. 홍삼과 비타민을 퍼부어도 겨우 기초 면역력만을 간당간당 유지했는데, 점점 발이 시리지 않다는 기분을 느껴가고 으슬으슬 추운 느낌을 잊어갔다. 동일한 온도로 난방을 해도 자다가 땀 흘리며 일어났는데 몇 번 반복되자 몸이 안 좋은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고민하다가 동생에게 말하자 언니는 더워서 땀이 나 깬 적 없냐면서 신기해했다. 처음이었다. 겨울에 자다가 더워서 땀이 나 깨다니.
정신건강은 말로 하지 않아도 퇴사자라면 알 수 있을, 상상할 수 있는 행복이었다. 2년 반 가량 일하면서 나름 모아두었던 돈도 있는 데다가 마냥 쉬기로 마음먹으니 더 이상의 걱정도 없었다. 당장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나를 위한 삶을 살았다. 아침에 갑자기 월남쌈이 당기면 바로 해 먹었다. 파프리카를 썰고 닭가슴살에 양파, 버섯, 라이스페이퍼까지 야무지게 준비해서 돌돌 말아먹었다. 내친김에 동생 도시락도 싸주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평화롭게 늦은 아침을 먹는 기분이란, 어쩜 그리도 좋을 수가 있는지.
그간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도 만나고 공연도 보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했다. 연락이 끊겼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몇 년 만에 연락을 해도 거리낌이 없더라. 내 마음이 가로막고 있었을 뿐 다들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대학생 때 해외 봉사를 같이 했던 친구가 가야금 퍼포먼스를 한다기에 몇 년 만에 보러 갔었다. 덕분에 좋은 공연도 보고 사람들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들 한결같아서 괜히 혼자 머쓱하고 고마웠다. 내 안의 문화적인 공간이 성장하는 기분은 덤이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공연이 끝나고 공연한 친구를 보러 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언니, 이게 얼마 만이야.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 왔네, 너무 반갑다!”라고 해준 말도 감동이었다. 타인이 주체라고 생각하고 다가가지 않던 내가 바보 같았다. 다들 거기 있었고 내가 움직이면 되는 것이었는데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고마웠다.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해독제는 건강한 일상 속에 있었다.
끝없이 기쁨의 농도가 깊어지면서 독도 스르르 빠져나갔다. 얼굴이 폈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로 밝아졌고 긍정적인 에너지도 축적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독만이 아니라 마음의 독도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독에 파묻혀 아파 버리면 억울하니까. 나를 먼저 보듬어야지. 아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