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에 네가 제일 바쁜 것 같아.
친구들이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자주 하는 말이다. 바쁘다는 단어가 긍정이나 부정의 뜻을 담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긍정을 뜻한다. 바쁜 게 좋다니, 엄마 아빠가 듣는다면 혀를 끌끌 차고 말 테지만 그래도 좋다.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면서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뭐하고 지내는데? 라고 묻는다면 너무나 현재만을 담고 있기에 아쉽다. 퇴사 후 어떻게 지냈는지를 책에 모두 담기란 어렵지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나를 위한 6개월을 보냈다. 수영과 요가를 하며, 포토샵과 엑셀을 공부했다. 잘 자고 잘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제주도와 미국을 다녀왔고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났다. 좋아하는 공연, 글쓰기, 책 등 문화생활을 즐겼고 소셜 살롱 등 모임을 직접 운영하기도 참여하기도 했다. 한가로웠지만 4개월이 지나자 노동이 하고 싶어 몸이 간질거렸고, 아직은 쉴 때라는 생각에 봉사활동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이 다 되어가자 자연스럽게 기회가 나에게 왔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스타트업의 크기는 광범위하다. 나는 수익모델이 구체화되지 않은 팀에서 약 6개월간 일했다. 다르게 말하면 돈을 벌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한데, 수익모델이 없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바빴다.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내게 대표는 좀 더 생각해보라며 말렸다. 시작 전에는 어떨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도전했던 거지만, 자칫 무모할 수 있던 시작이 나를 많이 성장하게 했다. 해야 할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사람과 시간은 부족했고, 나의 능력 또한 부족했지만 그렇기에 나와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던 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심리, 정신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과 전과와 정신 전문 간호사를 고려했었다.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자원해서 봉사활동도 했고, 4학년 마지막 선택 실습도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했다.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치료’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은 많고 ‘재활’ 역시 퍼져 있지만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신질환에 예방이라는 개념은 없을까 의문을 가지면서 유사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퇴사 후 글을 쓰다가 우연히 관심 분야가 같고 궁극적 목표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닌가.
다양한 형태의 글을 써볼 수 있었고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처음 해보는 일들 투성이었다. 병원 이외의 회사를 체험했고 창업 생태계도 잠깐이나마 몸담아 볼 수 있었다. 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 감사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없이 하나에만 몰두해서 나라는 개인보다 회사의 가치에 전부를 쏟아붓기도 했다. 그로 인해 또 한 번의 퇴사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전혀 후회는 없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즐거웠다.
두 번째 퇴사를 하고 지금은 다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전과 다른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에서 나아가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고 믿을 수 있게 됐다. 다 경험해봐야만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간호학과 출신이고 간호사만 해봤기 때문에, 다른 일은 못 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서른 살, 나만의 기준으로 정해놓고 다른 회사에서 일하며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방향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면 못할 일이 없다. 내가 못하는 것이라면 잘하는 사람을 찾아 함께하면 된다. 배우면 된다. 역시나 또 무모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 무모함으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왔고 발전해 온 것을.
두 번째 퇴사를 고민하면서 개인 프로젝트를 통해 나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뭔가 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두려운 마음 곱게 접어두고 책 출판을 위한 펀딩을 열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셨다. 담담하게 적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후원자분들 성함을 읽으며 행복해하곤 한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곧 책으로 만들어져 독립서점에 입고될 것이고 나아가 정식 출간과 북토크도 바라보고 있다. 마음잡고 제대로 퇴고해서 좋은 책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치앙마이로 날아와서 놀고 싶은 마음 붙잡고 글을 정리하는 나 자신이, 아니 현실이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동시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친구와 함께 기획하고 있다. 책을 쓰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더 샘솟았고, 미약한 나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내가 뭐라고 이런 것을 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뭐라도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원하지 않는 지식이나 경험을 통한 성장이 아닌 내 삶의 목적에 알맞은 배움으로 인한 것. 어떤 경험이든 어딘가에 한 톨이라도 도움은 되겠지만, 내게 더 빠르고 중요한 것을 배우며 성장하고 싶다.
내 삶의 목적은 크게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다녀감으로써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
어찌 보면 허무맹랑할 정도로 이상적이기도 하고 따지고 들려면 한 없이 따지고 들 수 있는 문장이지만. 원래 꿈은 크고 허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목적은 너무나 커서 담을 수 없어도 실행을 위한 자잘한 목표들이 실현 가능하게 구체적이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까. 읽고 계신 분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여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원하는 삶을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무책임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있고 뚜렷하다면 준비해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 모든 신입 사원들과 회사원, 특히 신규 간호사들에게.
대학교 4년 내내 힘들게 공부했는데 버리기 아깝다는 말은 남은 내 인생에게 미안하다. 4년은 긴 시간이 맞지만, 과거의 시간만이 아닌 미래의 시간도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간호사로서 살아도 괜찮다면 머물러도 좋다.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계속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힘들어서 퇴사했다가 갈피를 못 잡고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지금의 길이 아닌 게 확실하다면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자. 계획을 하며 준비해도 좋고 조금은 무모해도 괜찮다. 결국 답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무얼 하던지 나를 사랑하고 있으면 된다.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 행복해지자.
나와 나를 아껴주는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