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할 때는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꺼렸고 대화도 최소화했다. 본래 사람을 좋아하지만 적응과정에서 힘들면서 싫어하게 되었는데,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적응하며 좋아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항상 같았지만 내 마음이 변했던 것 같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져서 그렇다고, 관계에 열심을 다하지 않았던 나를 변명하고 싶다.
병원이라는 제한적이면서 부러 정 붙이지 않은 환경에서 만난 게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사람에게 아쉬운 점이 있는 게 아니라 병원이라는 문제 때문에, 퇴사하면 살면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직장에서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 것 같아서 괜히 아쉬웠던 사람들.
처음에는 타 직종의 사람들이었다. 같은 직종이 아니다 보니 얼굴 붉힐 일이 적어서 더 빨리 정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도 등장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호사 동료, 선후배님들에게도 마음을 열게 되었는데 꽤 많은 분들이 계신다.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았을 때 좋아한 이유는 다르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같다. 직접 말로는 못할 거라는 게 문제다.
아마 잘 모르셨을 것이다. 마음으로만 좋아하고 존경했을 뿐 크게 티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나는 그랬다. 마음이 점점 커진다고 해도 갑자기 좋다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사춘기 소녀처럼 뒤에서만 좋아하고 앞에서는 항상 똑같이 무뚝뚝했던 것 같다. 좋아하던 선생님이 퇴사를 해도, 아쉽다는 영혼 없어 보이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무표정이던 얼굴 표정이 좀 부드러워지고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 알기에는 관계가 부드럽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표현을 잘하고 잘 못하고가 중요하지만, 그만둔 지금은 그분들에게 더 많이 잘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서 존경하고 애정하는 분들께는 퇴사하면서 연락을 드리거나 미리 쭈뼛거리면서라도 아쉬움의 말씀을 전했다. 어찌 보면 퇴사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한창 퇴사 욕구가 컸을 때는 아무에게도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고 그만둬버려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실제 퇴사 날이 가까워지면서 차츰 스스로도 아쉬운 마음이 커져서, 어떤 분들에게 연락을 드려야 할지 고민도 했다. 정말 별거 아닌 메시지 몇 줄도 큰 부담이었다.
마지막 포데이는(나흘 연속의 데이 근무) 왜 그리도 바빴는지,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이 아주 정이 다 떨어져서 생각도 안 나게 해 주려고 그러는 걸 거라고 하셨다. 병원을 나올 때까지도 어리둥절하다가 송별회까지 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이제껏 미뤄두었던 락커에 있던 짐을 한가득 안고 피곤한 상태로 택시를 타니 싱숭생숭한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지. 쌓인 피로감도 어지러운 마음에 한몫했다.
오늘이 아니면 연락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고 연락드리고 싶었던, 정말 좋아했던 분들을 확인했다. 열 분 이내였는데, 바로 메시지를 보내기도 어려워서 휴대폰 메모에 고심하며 작성했었다. 두 분께 겨우 보내드리고 숨 돌린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안 그래도 메시지 보내려고 했었던 분들에게 연락이 쏟아졌다. 아쉽다고, 실감 나지 않는다고, 잘 지내길 바란다는 등 안 그래도 덜컹대던 마음에 불을 질러 주셨다. 먼저 메시지 보낸 두 분께 온 답장도 상상도 못한 내용이었다. 나 사랑받고 있었구나. 나만 몰랐구나. 잔뜩 오해하고 비뚤어진 채로 살았구나. 울컥하는 마음을 잠재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존경하던 선생님들께 받은 카톡은 아직도 지우지 못했다. 지우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지워질까 봐 무서워서 사진으로 캡처까지 해 둔 상태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가끔 그립다. 도저히 뭐가 그리운 것인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립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도 않고. 몇 달 전까지 내 이야기가 드물게 나왔다고 했다. 처음엔 싫었지만 이제는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걔 뭐 하고 지낸대?” “잘 지낸대?”라는 말이 관심이고 사랑이었음을, 나만 몰랐던 것 같다. 이제야 말랑해져 깨닫게 된다.
사랑받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