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된 분류도 소개합니다.
대학병원에 간다고 다 중환자가 아니듯, 정신과 환자라고 다 같은 환자가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함에는 기준에 따른 진단이 있고 알맞은 치료법이 있다는 뜻이다. 뉴스에 나오는 정신질환자는 대부분 급성기 조현병 혹은 약물관리가 잘 되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많다. 하지만 넓게는 진단으로만 불리는 공황장애, 우울증, 알코올중독, 불면증까지도 정신질환에 속한다.
정신질환임에도 정신질환이라 불리지 못하는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겨우 형성되던 시기에 기인하는 것 같다. 신의 저주, 마녀, 광기, 신경쇠약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생긴 부적절하면서도 촘촘한 인식은 정신질환을 질환계의 서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우울증을 다루면서 대중의 이해도 역시 높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현병만 정신질환자인 것처럼 통용되었고, 기타 장애에 있어서는 정신질환자라는 말은 더욱 꺼려지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말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에는 어떤 병명이 있을까. 인터넷에 질병명을 검색하면 치료법을 찾기도 쉽지만, 정확한 지식인지 믿기 어렵고 나와 똑같은 증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경험자의 정보 공유가 많고 지지자원이 풍부하다면 또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희귀병이나 정신분과에서는 환자가 힘들게 찾아 헤맬 수 밖에 없다. 의료라는 전문 분야의 특성 상 서비스의 대상인 환자는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바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물론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개인의 사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정신과는 병원에 가기 어려운 경우의 수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신체질환은 비교적 병원의 접근성이 높고 진단을 받기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애매한 증상이 있다면 바로 대학병원을 가기보다 동네 의원에서 해결을 보기도 한다. 혹 정밀검사가 필요하거나 세밀한 진단이 필요하면 더 큰 병원으로 갈 수 있고, 진단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난 이후부터는 경우에 따라 재활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공인된 치료법을 적용해 완치될 수도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애매한 증상이 있다면 바로 병원에 가기보다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해결을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의 예방과 재활, 치료에의 지원을 위해 지역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존재한다.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꼭 검색해보셨으면 좋겠다. 심지어 신체질환처럼 1차 의료기관에 가서 돈을 내지 않고도 무료로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 여부, 정신질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부족 때문에 당장 병원에 가기 어렵다는 인식으로 병을 키우기도 한다.
물론 신체질환도 낌새를 알려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질환도 있고, 성격이 예민하지 않아 증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일이 생겨 바로 대형병원에 가야할 때도 있다. 정신질환도 이 때 문제가 된다. 병원 접근성이 낮은 정신질환은 환자가 현재 느끼는 증상이 정신질환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정신질환에 대한 장벽을 낮추고 인식을 개선하자는 캠페인과 자료는 쏟아지지만, 여전히 장벽은 높기만 하고 정보는 부족해 보인다. 병원에 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인식 개선을 해야 된다고 말하지만 대중에 오픈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당장의 치료법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정신질환에 포함되는지, 어떤 병명인지, 분류는 어떻게 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신과 환자들의 분류를 정리해보았다. 공인된 정보와 더불어 근무하면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이 다분히 섞인 정신과 환자들의 분류를.
아래 KOICD에서 참고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신 및 행동 장애' 대분류에 대해 적어 보았다. 하단 출처 클릭 시 상세한 분류와 설명까지도 볼 수 있다. 정신과를 희망하는 의료인이나 일반인에게도 좋은 정보 창구가 되어 줄 만한 곳이다. 생각보다 공공 자료 중 쓸만한 것이 많다는 것은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
증상성을 포함하는 기질성 정신장애(Organic, including symptomatic, mental disorders)
정신활성물질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 장애(Mental and behavioural disorders due to psychoactive substance use)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Schizophrenia, schizotypal and delusional disorders)
기분[정동]장애(Mood [affective] disorders)
신경증성, 스트레스-연관 및 신체형 장애(Neurotic, stress-related and somatoform disorders)
생리적 장애 및 신체적 요인들과 수반된 행동증후군(Behavioural syndromes associated with physiological disturbances and physical factors)
성인 인격 및 행동의 장애(Disorders of adult personality and behaviour)
정신지체(Mental retardation)
정신발달장애(Disorders of psychological development)
소아기 및 청소년기에 주로 발병하는 행동 및 정서 장애(Behavioural and emotional disorders with onset usually occurring in childhood and adolesence)
상세불명의 정신장애(Unspecified mental disorder)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Dementia in Alzheimer’s disease) *항목
달리 분류된 기타 질환에서의 치매(Dementia in other diseases classified elsewhere) *항목
출처 : KOICD 질병분류정보센터 http://www.koicd.kr/2016/kcd/v7.do#5&n
DSM이란,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약자로 미국 정신의학회가 출판하는 서적이자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이름으로, DSM-5는 DSM의 5번째 개정판이다. DSM-5는 WHO의 ICD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정신장애 분류체계 중의 하나로서,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신경 발달 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s)
조현병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증적 장애(Schizophrenia Spectrum and Other Psychotic Disorders)
양극성 및 관련 장애 (Bipolar and Related Disorders)
우울 장애 (Depressive Disorders)
불안 장애 (Anxiety Disorders)
강박 장애 및 관련 장애(Obsessive-Compulsive and Related Disorders)
외상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Trauma and Stressor Related Disorders)
해리 장애(Dissociative Disorders)
신체 증상 및 관련 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s)
급식 및 식이 장애(Feeding and Eating Disorders)
배설 장애(Elimination Disorders)
수면-각성 장애(Sleep-Wake Disorders)
성 기능 부전(Sexual Dysfunctions)
성 불쾌감증(Gender Dysphoria)
파괴적, 충동-조절 및 품행 장애(Disruptive, Impulse-Control, and Conduct Disorders)
물질 관련 및 중독성 장애(Substance Related and Addictive Disorders)
신경 인지 장애(Neurocognitive Disorders)
성격 장애(Personality Disorders)
변태 성욕 장애(Paraphilic Disorders)
기타 정신 장애(Other Mental Disorders)
약물로 유발된 운동 장애 및 기타 약물 역효과
(Medical-Induced Movement Disorders and Other Adverse Effects of Medication)
임상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기타 상태 (Other Conditions That May Be a Focus of Clinical Attention)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하지만 분류체계를 알게 된다고 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진단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잘못된 치료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을 무시할 수 있고, 부적절한 낙인 효과나 차별과 편견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내용은 순전히 참고이며 정신질환이 이렇게까지 분류되는 구나, 하고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위와 같은 ICD-10, DSM-5처럼 세계적으로 공인된 분류체계의 기준에 주된 관점을 두고 진단하고 따름이 마땅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사람이다보니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다.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특징으로만 분류한 것이라 한 분류에 속한다기보다 자주 나타나는 특징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또한 한 곳의 정신전문병원에서 겨우 105일 일한 간호사 개인의 견해이고, 안정 시의 상태를 바탕으로 했으며, 의료인이라기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작성했다는 것을 참고 부탁드린다. 내가 본 사람들은 이렇게 나뉘었다.
1. 치매 환자
1) 말없고 차분하나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깜빡깜빡하는 사람
2) 시도때도 없이 시비 걸거나 화내고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는 사람
2. 치매 외 환자
1) 타 환자와 교류 적고 잠만 자며 하루종일 누워 있는 사람
2) 타 환자와 교류 적고 병실 내에서 혼잣말만 계속 하거나 환청, 환시 등과 종종 싸우는 사람
3) 타 환자와 교류 적고 끊임없이 홀을 왔다갔다 하며 몸을 움직이는 사람
4) 타 환자에 자주 시비 걸며 피해사고를 보이는 사람
5) 타 환자와 자주 교류하는 듯 보이나 다툼이 잦은 사람
6) 병동 내 모든 일에 관심이 많고 참견하며 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
7) 병동 내 모든 일에 관심이 많고 참견하며 나서서 돕고 댓가를 바라는 사람
8) 동일한 단어/말/행동에 집착하며 반복적으로 요구하거나 행동하는 사람
9) 계속해서 불안감 호소하며 매일 같은 시간대에 약을 요구하는 사람
10)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려고 하며 계속해서 운동하는 사람
11) 병동 내 규칙에 따르지 않고 어기려는 궁리만 하는 사람
12) 병동 내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주 어기는 사람
13) 입퇴원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는 사람 - 의료급여 대상이 되고자, 술을 끊기 어려워서 등 이유는 많다
14) 세수, 샤워, 양치질 등 기본 위생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
15) 사소한 불만/매일 지속되는 민원 많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
16) 타 환자들을 신기해하며 간혹 이야기하나 조용히 지내는 사람
17) 소수의 환자와 잘 어울리며 문제/불만이 거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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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더 많지만 생각나는 대로만 써 보았다. 언뜻 보면 이렇게까지 분류가 된다고? 나도 말이 많은데? 나도 하루종일 자는데? 나도 잘 안 씻는데? 등등의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드러지는 사람들이 많다.
공인분류체계와 개인적인 분류를 모두 정리하다 보니 느끼는 것이 많았다. 진단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수도 있지만, 한 명이라도 내 증상이 정신과적 문제일 수도 있구나 생각하고 적절한 처치를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잘 모르겠을 때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가까운 심리상담소, 만약 꺼려짐이 덜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가는 것을 추천드린다.
* 105일 간의 정신과 간호사를 하게 된 이야기
* 정신과 간호사 채용공고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