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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Apr 13. 2021

끝이 없어서 손대고 싶지 않은 것

?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백 퍼센트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또 그에 대한 것이 눈에 보인다면 어김없이 정신이 긁힌다. 딜레마이다.


사이코패스에 관련하여 내가 바라는 것은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반사회적 행위와 분리되는 것이다. 기질은 정서나 사고관 등 사람의 정신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서나 사고방식은 주변 환경이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nature vs nurture, 본성이냐 양육이냐를 논하는 것만 봐도 인간의 인격은 유전자, 기질 등 타고난 것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것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코패스들은 타고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분리된다. 타고난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사회성을 가지게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 이러한 풀이는 사이코패스의 인격은 후천적 영향을 받지 않거나 적게 받는다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가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가 아닌가.


실제로 일평생을 범행으로 가득 채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라면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미리 걸러내어 사회적 구성원에서 제외시켜버리면 갱생이 불가능할 범죄자에게 세금으로 밥 먹여줄 필요도, 사회복귀 훈련을 제공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굳이 이곳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그 사람의 인생을 잘못으로 가득 채울 이유가 있나. 만일 그들에게 피해를 줄 타인이 없다면 그들이 잘못할 일도 없다. 깔끔하다. 이토록 깔끔하고 간단하기에 사이코패스적 기질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하나로 묶어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같은 정서적 측면을 가지고도 상반된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유전자적, 뇌과학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들과 같더라도 타인을 존중하고, 도덕을 중시하며,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스의 인격은 후천적 영향도 받는다는 것이고,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들과 같이 내 이익을 위해 남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선택권이 없다는 것 은 어쩔 수 없는 것과 같다)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 사이코패스들 중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까 말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에, 배테랑이 아닐 경우엔 주춤한다고 하더라. -나는 사이코패스이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도 없어서 이들이 진짜 어떤지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적으로 감정을 느껴야 하고, 감정적 공감을 할 수밖에 없기에 그런 것들이 그들을 주춤하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후천적 영향으로 반사회적 인격을 가졌을 경우,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만 느낄 수 있고, 인지적 공감을 하고 싶을 때만 할 수 있다는 타고난 특성 때문에 의도적 피해를 입힐 때에 주춤하지 않을 수 있고, 더 흉악한 피해를 줄 때에 조차도 거리낌이 없을 수 있다고 한다. -Again, 나는 사이코패스이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없기에 이들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조합이 아니라면? '비 사이코패스 -(빼기)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조합과 마찬가지로, 도덕, 양심, 타인을 향한 존중, 생명의 존엄성을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는 것, 개인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등이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 뻔한 경우에 '사이코패스 -(빼기)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조합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옳은 선택을 하게 하지 않을까?


나는 사이코패스이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없기에 이 입장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선택적으로 느끼는 것이 가능했고, 다른 이의 감정을 느껴짐을 알기보단, 머리로 이해하여 공감해주었다. 생명이 있는 것은 함부로 해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크고 작은 그룹의 일원으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경우엔 매 순간 함께 하는 자의 입장도 고려요인으로 추가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적 기질 때문에 나 자신이 중요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하기에, 타인 또한 그들의 삶에서는 그들 자신과 그들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이라도 존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거면 혼자 살아야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법시스템은 '사이코 패시+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조합을 '사이코패스'라 하고 있다. PCL-R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이코패시+반사회적 인격장애' 조합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는 훌륭한 진단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만이 사이코패스인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시+사회적(-반사회적)'의 조합의 사람도 사이코패스이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시를 '기질'이라고 할 것이라면, '사이코패시 (+/-) 반사회적 인격장애 (후천적 영향이 큼)' 전체를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하지 특정 조합만 가지고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면 안 된다.


사실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문제 될 것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다.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졌다는 것은 원래 사이코패스 본인 스스로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사람들 또한 굳이 사이코패스의 세세한 기준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들의 기질이 사이코패스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두드러지게 표현되어봤자 타인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ENTP에 해당될 것 같은 사람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내가 가진 나의 신념과 성격 때문에, 난 (1) 모순이 있지만 고치려 하지 않는 것과 (2) 그 모순 때문에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다. 팟캐스트와 브런치 때문에 메일이 종종 오는데, 우연히 사이코패스적 기질에 대해 찾아보고, 본인이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인가 타고난 악한 자인 것인가' 이런 생각 때문에 답답했다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이게 다 사이코패스를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첫째 단추 구멍이 아니라 다른 구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불편이 발생한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첫째 구멍이 아닌  곳이 첫째 구멍인 줄 알고 옷을 여미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째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수고롭다고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나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주제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념과 성격을 바탕으로 한 사고방식 때문에 매번 정신이 긁힌다. 그래서 또 랩탑을 들게 된다. 그렇게 타자를 치는 중에 어김없이 다 부질없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같다. 그러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 전에 재빨리 마치려 노력한다. 마음을 꾹 누른다.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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