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스페인이든 캐나다든 한국이든 어디나 비슷한 모습 같다. 비슷한 환경에서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도록 학습된 걸까. /Ricoh GR3 @Spain
스페인은 '하몽의 나라'다. 동네 슈퍼에 가도 다양한 종류의 고기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대형마트나 외국 식자재 마트에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비엔나소시지처럼 흔하게 판매하고 있다. 하몽 전문점도 있다. 아마 폰페라다를 지날 때다. 대도시의 정갈함에 놀라 아무렇게나 동여맨 옷가지를 주섬주섬 정리했었더랬다. 그 와중에 사진은 찍고.
여담이지만 나는 순례길에서 넥스트랩을 이용해 리코 GR3를 목에 걸고 다녔다. 덜렁거리긴 했지만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언제든 꺼내 쓰기 위해서다. 그 결과 폰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폰으로 찍은 결과물과 비교하면 잘한 선택 같다.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필름 카메라를 두고 간 것이 후회로 남는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면 어땠을까.
다시 돌아와서 하몽 이야기를 하면, 예전에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스페인 부부가 하몽을 대접해준 적이 있다. 엄청난 양이었다. 수북하게 쌓아준 것은 아니지만 다 먹으면 또 주고, 다 먹으면 또 주는 방식으로 하몽을 접시에 얹어줬다. 부부는 영어를 하지 못해 몸짓이나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손에 칼*을 쥔 채 쳐다보고 있다가 하몽을 먹으면 웃으면서 또 한 점 주니까 도통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칼은 하몽을 건네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기하게도 칼로 하몽을 떼서 줬다.
더군다나 아저씨는 정말로 순박한 인상을 지녀서 조금 과장하면 토하기 직전까지 하몽을 먹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더라면 가지고 있던 하몽을 모두 줬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외지인인 내가 하몽을 (처음) 먹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다른 짓을 하다가도 내 접시를 수시로 확인했다. 내가 하몽을 먹으면 또 그렇게 좋아했다. 이런 상황에서 Stop이라든가 Enough라든가 I'm full 따위의 말로 그들의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친절에는 어떻게든 호응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지나다 보면 가끔 엄청난 규모의 일(농업/임업/축산업)을 소수의 사람이 담당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Ricoh GR3 @Spain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다. 대도시와 소도시의 차이는 확연하다. 이 둘을 잇는 거리는 자연으로 가득하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상업보다 농업, 임업, 축산업 등에 종사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분들의 생계는 대게 대자연 그 자체를 상대로 하는 일이 많은지라 어딜 가도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곤 한다.
역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조금만 가미해 본다면 B급 호러 영화에 등장하는 실종, 감금 스토리가 가능한 환경이다. 인적이 드물고 사람의 왕래가 없는 횡단거리 800km 이상의 어느 시골 축사 또는 폐공장. 그런 환경에서 태연히 걷고 또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니. 문명이란 참으로 인간답게 발전해왔다는 생각을 역설적으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