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6
어렸을 때 엄마가 멸치똥을 따라고 하거나 콩나물을 다듬어라고 할 때 혹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딸 때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헉, 이걸 언제 다해?"
그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눈이 게을러서 그렇지, 금방 해"
옛말에 게으른 일꾼은 밭고랑만 세고, 게으른 선비는 책장만 센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해보기도 전에 멸치가 몇 마린지, 밭고랑이 몇 줄인 지를 헤아리며 '이 많은 걸 언제 다하나...'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단지 눈이 게으른 것뿐이라는 것을.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사람은 눈을 통해 정보의 70% 정도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섯 감각기관 중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문제는 눈이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속성이 훨씬 강하다. [스탕달의 연애론]에 아주 못생긴 프랑스의 희극배우 '르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르캥에게 빠지지 않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물론 그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처음 얼마간은 여전히 그가 못생겨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이 여자들의 마음에도 신경학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못생겼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가 나타나기만 여자들은 열광하며 이렇게 외친다. "정말 너무 잘생겼어요!"
눈에 콩깍지가 씌면 얼굴의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이듯이 못생긴 사람을 잘생긴 사람으로 둔갑시킨다. 키가 작은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눈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실제보다 키를 더 크게 보기 때문이다. 맛있는 포도를 보며 신포도라고 우기기도 한다. 또 그 유명한 '고릴라실험'이 증명하듯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눈앞에 고릴라가 지나가도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눈이다.
눈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먹어보기 전에는 맛을 알 수 없다. 일은 해보기 전에는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쉬운 일인지 힘든 일인지 알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보기에 얼굴은 잘 생겼지만 성격이 개나리 십장생 시베리안 허스키 같을 수도 있고, 옷차림은 세련되어 보이지만 능력이 쥐 똥 같을 수도 있다. 같이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일하고 여행 가보기 전에는 그의 성격이나 인품, 능력을 알 수 없다. 뭐가 됐든 겉모습 보고 섣부르게 판단은 금물이다.
p.s 얼마 전 리움미술관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미술관 로비에 웬 노숙자? 자세히 보니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었다. 생존을 위해 눈은 척 보고 빨리 판단하는 것으로 진화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의 판단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