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김정 Sep 26. 2024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소중한 것



2년 넘도록 단 한주도 빠짐없이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상대는 묘령의 여자였다.

이름은 알았지만, 얼굴은 몰랐다.

난 군대에서 있었고,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펜팔인가 갸우뚱할텐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왔고, 나는 그 답장에 답장을 하는 식이었다.

자연스레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쓰는 간격이 되었다. 분량은 적을 땐 한 장, 많을 땐 서너장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내무반 독서실 백열 조명 밑에서 써내려갔다.

혼자 근무하는 직감처에서도 또박또박 썼다.

기합을 받은 날도 편지를 썼고, 포복할 때도 썼고, 훈련 기간에는 화생방 방독면 마스크를 쓴 채 썼다(농담).

주로는 모나미 볼펜으로 썼고, 낙타가 새겨진 HB연필로도 썼다.

편지지가 떨어지면 점토판에 메소포타미아 스타일의 쐐기 문자를 음각으로 새겨 보낸 적도 있다.(이것도 농담. 농담이 많아 죄송합니다)     


어떤 날은 쾌청했고, 어떤 날은 번개가 번쩍 하고, 비가 퍼붓는 날도 있었다. 태풍이 불어와도, 눈폭풍도, 우박도 상관없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지를 썼다.

쇼생크 탈출의 은행가 앤디가 독방 벽에 탈출구를 몰래 파내려가듯 성실하고도, 묵묵히 몰래 몰래 썼다.

먼 곳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여대생에게 말이다.     


90년대였다.

레트로한 시대다. 낭만도 있었고, 클래식했다.

아직 마이클잭슨이 살아있던 시대였다.

12인치에 33과 1/3 rpm의 LP판이 턴테이블에서 마지막 온기를 내고 있던 시대다.      




편지의 내용은 주로 일상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학교 캠퍼스 얘기, 남자친구와 싸운 일, 단골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 신기한 알바, 읽었던 책에 대한 감상을 보내주었다.

나는 당연히 군대 얘기를 했다.      


공군에 복무를 했기 때문에 비행기가 화제의 중심이다.

비행기를 몰지만, 운전면허는 없는 조종사가 있다든지.

부대가 넓어 내무반에서 근무처를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한다든지.

비행에 방해가 되는 새를 전문으로 잡는 군인이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여대생이 들으면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런 얘기들을 즐겁다고 해준 그녀에게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일병 때인가, 한번은 그녀가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도 운동에 대해 뭔가 답장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난 운동에 젬병이었다.

학생때 체육은 늘 평균이하였다. 철봉과 뜀틀은 공포였다.

공으로 된 것은 다 못한다.

체육시간에 핸드볼 던지기를 하다가 골기퍼 얼굴에 공을 날려서 코피를 터뜨린 적도 있다.

골기퍼는 골대 옆에서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도 뭔가는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소재를 찾아서 보냈다.

부대에서 가을 체육대회를 하는데, 족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소프트볼도 하고(공군은 부대가 비행장 기지라서 남는 게 땅이라 뭐든 한다. 대신 공을 주어오려면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할 정도.).

메인 이벤트로 비행장 전체를 한바퀴 도는 10km 마라톤도 한다고, 신나게 자랑을 했다.     


답장이 왔다.

‘10km 마라톤이라니요. 정말 멋진 일이에요. 마라톤 러너를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고.     


그렇단 말이죠.     


그래서 나는 10km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했다.     


“10km 마라톤을 뛰겠다고?

대회 신청서를 쓰는 내게 근무처 고참 병장이 물어왔다.

“네.”

“뛰어본 적은 있지.”

“아침에 구보 뛰잖습니까.”

“허걱.”

“고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도 해봤습니다.”

“그, 그게...”

“스포츠 방송 중에 마라톤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애청합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체육대회날이 되어, 마라톤 선수 대기실에 들어갔더니, 부대내 모든 대대들의 내놓으라 하는 선수들이 맹렬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같은 대대 고참들이 나를 보자 눈이 커졌다.

“야, 이일병. 그거, 대민활동 추리닝 긴바지잖아, 엥 전투 운동화? 야! 얘 좀 어떻게 해봐라.”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한 어느 상병을 졸도시켜(농담) 반바지와 런닝화를 벗겨서 내게 입혔다.     


그리고 출발.

“탕!”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10km 마라톤을 뛰게 되었다.     


소감이라든지 감상은 이렇다.     


오랫동안 달리고 있으려니 영혼이 순수해지는 기분이었다.

전쟁, 유엔, 핵무기, 기후이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친, 돈 욕심, 물욕, 미래에 대한 걱정, 이런 모든 게 아무 것도 아니란 듯 소멸해버리고, 그저 내가 밟는 땅과 하늘과 숨 쉬는 공기만이 현재 라는 세계 속에 온전히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삶과 죽음도 이런 걸까 하는 형이상학의 쉬르레알리즘 철학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만져질 지경이었다.

     

여기까지는 정서적 감상이고.


근데 현실과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에에엑! 크악!”

“이일병! 이 자식. 달리면서 오바이트를 하네.”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보조를 맞추던 근무처 두 고참 병장이 내게 한 말이다.

한분은 은행 다니다 왔고, 다른 한분은 아마 웨이터하다 왔을 거다.
 “우에에엑! 콜록콜록!”

“앗! 드러워. 콧물, 침 다 흘리고. 옷에 으으 튀었다. 튀었어.”     


거기다 달리다보니 입고 있는 옷에 살갗이 쓸려서 아파왔고, 다리도 내 꺼가 아니기 시작하고, 목도 마르고, 아니 비틀어 쥐어짜는 것 같고, 그랬다.

이게 더 정확한 현실이다. 삶이고 죽음이고, 쉬르레알리즘이고, 형이상학이고 간에.     


그러다 코스 중간 즈음이었다.

육군에서 파견 온, 비행장 기지를 지키는 방공포 부대에서 마라톤 선수들을 응원한다고 간이 음수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TV에서 마라톤 방송을 보면 나오는 그럴듯한 마라톤 러너의 음수대였다.     


‘히야, 저런 게 있었네.’ 하고 갑자기 신이 났고, 분위기도 났다.

헤헤헤 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선수 여러분. 목 축이고 가세요.”

여러분이라고 하지만, 그 타이밍에 선수는 나 하나뿐이였다.     


“야! 여기서 콧물하고 침이나 닦고 가라.”

고참이 그곳으로 자상하게 유도를 했다.   

   

아무튼 얼굴이며, 옷이며 벅벅 닦아내고. 목도 축였다.

순수하게 응원하는 착해보이는 방공포대 부대원들이 한 목소리로 격려해주었다.

“아이고, 마라톤이 힘들텐데, 우리 공군 형님들 대단하시네요.”

“오바이트까지 했네요. 대단혀요. 불굴의 의지네!”

“당신은 무적 공군 용사이십니다!”

엄지 척까지.

응원의 변, 격려의 변, 칭찬의 변, 좋은 말은 다 해주셨다.     


“고맙습니다! 다 마셨으면 우리는 이제 출발하자.”

뒤에서 고참이 재촉했다.     


나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그때다.     


돌연.     


나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물컵을 사정없이 내동댕이쳤다.

컵은 방공포대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을 쑹 지나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탱, 탱, 탱그러렁.” 하고     


플라스틱 물컵. 바야흐로 컬러는 파란색. 군용 납품 제품이다.(공군의 컵은 모두 파란색이었다.)     


이건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사연은 이랬다.

마라톤 방송을 보다보면 마라톤 러너들이 코스 중간 음수대에서 일회용 물컵을 받아 목도 축이고, 머리며, 얼굴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후 러너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으니 다 비운 일회용 물컵을 달리면서 내동댕이 칠 수 밖에 없다. 그걸 계속 챙겨서 결승선까지 갈 수 없으니까.

대충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면이 내게 순식간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기분이 들뜬 나는 의당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자동 반사적으로, 오토매틱하게 말이다.

그래서 마치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들어요, 에스컬레이터에선 좌측은 비우세요, 하는 것과 같은 반사적인 행동처럼 나는 그것이 뇌에 신호를 보냈다.     


‘러너여! 다 마신 물컵을 내던져라.’ 하고.   

그런데 내가 던진 건 일회용이 아닌, 방공포대원들이 매일 애용하며 쓰는 어엿한 내무반 물컵인  것이다.


한마디로 미친 거였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다.    

 

정말이지 난 왜 그랬을까.

하필이면 그때 왜 그런 게 반사적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너무 들떴나.

마라톤 방송을 너무 열심히 본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 장면 앞에서 일시에 얼어붙었다.     

신나게 응원하던 방공포대 순진한 군인 아저씨들도.

내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고참 병장들도.

방공포대 사무실에서 양치하며 나오던 아무것도 모르던 중사 아저씨도.

하늘로 날아가던 새들도, 가을 잎이 물들어가던 가로수들도 모두 얼어붙었다.     


‘저 자식 뭐하는 거지’ 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원래의 마라톤 코스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꽁무니가 빠지도록.

뒤에선 죄송하다며 방공포대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사과를 하던 고참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다시 돌아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너무 멀리 달려와버렸다. 멈춰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기에도 정말 멀리 와버렸다.

너무 멀리 와서 난 이미 그들 눈에 볼 때 일개미처럼 작아져있었다.

그만큼 쏜살같이 뛰었다.     


정말 내 인생 어처구니없는 실수이다. 난 왜 이런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는 부대 통틀어 내놓으라는 선수들 틈에 끼여 50여명중 9등을 했다.

근무처 하사관이 칭찬했다.     

“이일병 초보인데, 이건 미라클이야.”     


미라클 맞다. 물컵의 미라클.

왜냐.

실은 물컵 던지고 꽁무니 빠지도록 쏜살같이 달린 것이 상위 등수에 영향을 준 듯 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날을 이렇게 회고해보고 있으면, 러너고, 마라톤이고 뭐고, 그리고 그러한 등수고 뭐고, 인생 이면에 뭔가 다른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가끔 등수를 따질 때나, 순위를 따지거나, 경쟁을 할 때 이 일과 관련해서 퍼뜩 떠오르는 것.

잊고있다가 생각나는 것.     


뭔 얘긴가 할텐데, 다른 건 아니다.     


등수가 그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런 건 물컵 미라클이면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얼렁뚱땅한 사람에게는.

그리고 나처럼 매번 실수나 하고 얼렁뚱땅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중한 건 이런 게 아닐까싶다.

결국 나를 끝까지 따라와준 두 고참 병장들이었다 라는 것.


출발선부터 결승선 끝까지 나를 응원했고, 초보라 중도에 쓰러질지 몰라서 떠나지 않고 내내 봐주었다.

그리고 그 물컵이라는 지상 최대의 실수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함구해주었다.

본인들이 제대할 때까지도, 은행으로 돌아가고, 웨이터로 복귀할 때까지도 비밀을 지켜주었다.

나도 제대를 해서 복학하여, 사회에 진출해 회사원으로 경쟁을 하는 때가 있을때면 잊고 있다가도 갑자기 그분들 얼굴이 떠올려졌다.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을.     


“야! 여기서 콧물하고 침이나 닦고 가라.” 하고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약간 지저분한 얘기지만 그렇다.     


그분들께 지금도 감사함을 느낀다.     




그로부터 이듬해인가, 그 방공포대 근처를 간 적이 있다.

제초 작업이었는지, 그해 여름 장마로 무너진 기지 담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그런 류였다.

그런 일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 그 방공포대였다.     


대대본부에서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수고한다고 막걸리가 나왔다.

옆에선 주거니 받거니 부대원들이 코가 꽐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난 틈을 보아 막걸리중 두병을 빼돌려 그 방공포대 사무실 문 앞에 두었다.

똑똑 노크를 하고, 지난번처럼 쏜살같이 도망쳤다.

지금으로치면 비대면 로켓배송이다.

직접 전달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너무 민망했던 것이다.     


“맛있는 막걸리 마시세요.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하고.      

   



후일담으로 편지를 교환하던 여대생에게는 10km 마라톤 일을 써서 보냈다. 컵 얘기는 쏙 빼고.


그랬더니 이런 답장이 왔다.     


“곧 빼빼로데이인데, 남자친구가 말이죠...” 하고.     


음, 빼빼로 데이란 말이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얘기는 또 나중에.)          




이런 얘기를 글로 써내려가면서 생각해보니 그분들이 모두 그리워진다.     

고참병장분들, 방공포대 여러분, 얼굴도 모르고 편지를 주고받은 여대생분.     

 

특히 아무 죄없는 파란색 군용 납품 플라스틱 물컵에게 이 말은 전하고 싶다.     


“그때 길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서 정말 미안해.” 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