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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Nov 01. 2024

회사 출근을 목욕탕으로 합니다




난데없이 회사 출근을 목욕탕으로 한다니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할 겁니다.


실은 전 회사에서 한동안 목욕탕 업무를 했습니다.


목욕탕 회사를 다녔느냐고요.

아닙니다.


이름만 대면 “아하, 그 회사” 하고 단번에 아실만한, 목욕탕과는 일도 관계없는 회사였습니다.

그럼 어째서 라고 하겠죠.

그러게요, 어째서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회사에서 테마파크 사업을 기획하게 됩니다.

갑자기 심심해져서 한 것은 아니고요. 그럴 리가 없겠죠.


회사에서 생각하기를, 돈은 좀 있긴 한데, 새로운 걸 안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았던 겁니다.

기업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같아 한발만 늦어도 먹고 먹히는 무시무시한 세계인 거죠.


어쨌든 뭔가 신박한 것을 해야겠고, 그게 테마파크였던 거고요, 안할 수는 없는 미래 준비 비스무리한 일환이었던 겁니다.

그 테마파크중 하나가 워터파크였던 거고요.     


자, 그런데 말이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워터파크에는 마치 계륵처럼 필요한 시설이 있습니다.

뭘까요.


바로 목욕탕입니다.     


물놀이를 하고난 후, 누구라도, 그게 대통령 할애비라도, 그 할애비의 오촌 당숙이라도, 그 당숙에 사돈에 위엣층 쿵쿵거리는 이웃이라도, 네, 그만하겠습니다, 여튼 집에 돌아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목욕탕입니다.


굳이 목욕탕까지 만들 필요없이 샤워 부스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라고 하겠지만, 그건 왠지 대충 닦고 지나가는 느낌이라서, 영 거시기합니다.

(게다가 욕탕에 밀린 쉬도 좀 하고요. 죄송합니다, 욕탕 살균 담당 관계자 여러분.)     


헌데 여기에는 시작부터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 문제 없는 일은 없지만요.

그 문제란 게 뭐였냐 하면요.


회사에서 목욕탕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 목욕탕 전공한 사람은 없나? 목욕탕학과 라든지, 사우나 학과 같은.”

그런 전공이 대학에 존재할리 만무하지 않을까요. 온천이 많은 아이슬란드나 고대 로마 제국 같으면 모르겠지만요.


“얘가 사우디어 전공했는데, 관계없겠죠.”

관계없습니다.


“경제학, 전자공학, 법학, 싱어송라이터학, 바로코 성학, 사교댄스학, 반려동물학 다 있는데 말이야, 그 많고 많은 것중에 목욕학만 없네. 나 참. 혹시 목욕 좋아하는 사람은 없고?”

세상에 목욕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요! 땡땡이 칠 때 가끔 사우나 가는데.”

“이 자식. 지난번 팀 경비가 박살났는데, 이제서 실토하는구나. 코브라 트위스트 맛좀 봐라! 이눔아.”

“으웨웩!”

팀 내분으로 지저분해지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어쨌든 목욕탕 없이 워터파크만 만들 수는 없다는 게 정론입니다.


그럼 결국 이 일을 누가 했을까요.

접니다.     


그 목욕탕 업무를 제가 자진해서 맡게 된겁니다.

제가 이런 성격이 아닌데, 그땐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놀랄 노짜이고, 신기 신짜이고, 맹랑 맹짜였습죠.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바로 제가 애정하는 만화중 하나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기 때문입니다.


열 살의 오기노 치히로가 유령 마을의 아부라 온천장 목욕탕을 청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걸 떠올리기만 하면,

“아, 아, 아.” 이마의 땀을 닦으며 청소하는 그 근면 성실성하며, 김이 하얗게 모락모락 하는 목욕탕 내음에, 밀대 청소의 뽀득뽀득 맛깔스러움이라니,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정녕 몸 속 깊은 곳에서 정념의 혼이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너무 감동에 젖었나요. 죄송합니다.

서두가 좀 길었다 생각하는데요.

그럼 이쯤에서, 궁금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야기 들어가겠습니다.     


목욕탕 업무라는 건 과연 어떻게 하는 거냐고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현장에 입각한 실전적인 부분이겠죠.     


걱정하실 건 없고요, 생각보다는 간단합니다.


출근 양복 정장을 차려입고.

목욕탕을 가면 됩니다.

오전에 가도 되고, 오후에 가도 됩니다.

시간대는 원하시는대로.


그리고 목욕탕 안을 샅샅이 조사하고, 체험을 합니다.

갔다온 것을 잘 기억하고, 메모해두었다가 회사에 돌아와 정리를 합니다.

정리가 끝나면 책상 위를 정돈하고, 연필과 필기도구를 가지런히 놓고요. 데스크탑은 절전을 위해 잘 꺼둡니다.

목욕탕 업무를 하는 사람은 무릇 이래야 합니다.

‘자신의 책상 위부터 정갈하게 하자.’

이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런 후 때가 되어 테마파크 대회의가 열리면, 목욕탕에 대해 제 의견을 발표하면 됩니다.     


제 첫 발표 자료 제목이.

‘오기노 치히로처럼 깨끗하게 경영하는 목욕탕 비법’


이걸로 알밤 한 대 맞았습니다.

“회사 업무가 장난이냐.”

아니죠. 그렇지만.

“정념의 혼이 닿는 느낌으로 작성...”

“딱! 그래도!”

팀장님은 따님이랑 지브리도 잘도 가셨으면서. 흑흑.     


어쨌든 이렇게 해서 저는 그럭저럭 이삼년동안 목욕탕 업무를 하게 되는 회사원이 됐습니다.    

 

당시 여자를 소개받아(미혼이었으니까요) 나가는 자리에서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하게 되는데, 여자분이 묻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 하세요? 신사업기획? 경영전략? 그런 거라고 들었는데.”


“아, 그게, 목욕탕 다닙니다.”


“목, 목욕탕이요???”


“남탕, 여탕 나눠서 들어가고. 세신사분도 계시고, 그런 곳이요. 참, 때는 좀 미시는 편인가요?”


어머, 때, 때요???


“세신업계도 발전을 많이 해서, 요새는 마스크팩에, 유기농 오일케어에, 페이스 클렌징까지 기본 베이직이 탄탄합니다. 뭐 우유세신, 바디필링, 스팀지압까지는 옵션이긴 한데, 콤플렉스하죠. 바야흐로 브렌딩 퓨전 시대니까요. 거기다 때밀이 베드도 인체공학적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라 클랙식한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 . . 참 좋으네요. 실례지만 화장실좀 갔다올...”


제 설명이 업소용이라 좀 지루했나요.

그렇게 저는 혼자가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매우 외로운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하긴 이 세상 어느 누가 목욕탕 업무를 할까요.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래로 한정해서 보면 더욱 적었고요.     


업계 회식을 하면 한두명 모일까요.

돼지껍데기 맛집으로다 예약을 했는데도요.     


이러니 비가 추적추적 오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기분이 울적해져서 저는 왜 이 일을 자진했을까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정녕 제가 잘못 선택한 일일까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사건이 터집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운명처럼 한 드라마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드라마 제목은 ‘고독한 미식가’였습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그곳의 메뉴를 음미하고 혼잣말을 하며 식사를 마치고 혼자 나옵니다.   

  

마츠시게 유타카.     


유심히 보니, 저와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외모가 비슷하다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좀 밀립니다. 많이.

(그분은 영화배우잖아요. 안그런가요. 반칙이잖아요.)


그럼 비슷하다는 건 뭘까요.

제 눈에 또렷이 비친 것은 혼자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그저 아저씨가 밥 먹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도 그저 목욕탕을 갈 뿐입니다.”

비슷하죠.

아닌가요.

어쩌면 목소리 정도는 비슷할 수도 있고요.     


아무튼 생각해보니 고독한 미식가에 비견될 것은 아니더라도, 달리 말하면 당시의 저는 고독한 미욕가였던 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츠시게 유타카처럼 혼자서 여러 목욕탕을 전전하며 그곳의 풍미며, 깊이며, 수온이며, 물의 촉감을 가늠합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합니다.

“이 욕탕물의 닿는 느낌은 어쩌구, 습식 사우나 김 분말이 저쩌구, 목욕탕 초코우유 맛이 그러쿠.” 합니다.


옷깃을 여미고 혼자 목욕탕을 나오며, 중얼중얼거리는 것도 비슷하고요.

딱히 말을 걸어볼 옆에 동료가 없는 게 이유지만서도요.

(일례로 제가 이때 배운 게 얼렁뚱땅 복화술입니다, 혼자서 1인2역 하는 거죠. 음, 어쩐지 얘기가 웃프게 가는 것 같아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쯤에서 오해하실 분이 계신가요.

이 녀석 고독한 미식가에 숟가락 얹는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전 유명 드라마 운운하며, 제 일을 추켜세울 생각은 일도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할만한 일도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압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엔 이것보다 더 훌륭하고, 의미있고, 보람있는 직업이 십억개도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제가 이렇게 고독한 미식가와 비유하게 된 것은 말이죠.

다른 이유에서 입니다.     


솔직히 이걸 하고 싶었거든요.

마츠시게 유타카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저 아저씨가 목욕탕을 가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라고요.     


이렇게 말하고나면 왠지 고독한 미식가도 저렇게 열심히 혼밥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데, 혼자 목욕하는 게 뭐라고, 하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저도 어쩌면 지금이 가장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겁니다.

젊은 시절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당시도 유행이었습니다.


혼자 목욕탕을 다닌다고 해서 돈이 나올까요.

때만 나옵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때만 많이, 한 트럭 나옵니다.   

  

돈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도 돈의 소중함은 잘 압니다.

그렇지만, 늘 돈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주 가끔은 그때 참 혼자서도 잘도 목욕탕을 다녔고, 초코우유도 낼름 잘 사마셨고, 드라이기의 훈훈함은 과연 훈풍이었고 하며, 그리고 어쩌면 그때가 정말 즐거운 한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겁니다.     


별 얘기도 아닌데 많이 길었습니다.

목욕탕 업무의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제 톤이 그래서인가, 지금까지 분위기가 숙주나물처럼 팍 죽은 느낌입니다.

원래 빵빵 터뜨려야 하는데, 오늘 비가 와서 그런가 눅눅하네요.

말투가 존대어라서 그런가요. 바꿔봤는데, 이상하죠.

또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그럼, 자, 이제부터 당연하겠지만, 그때 있었던 즐거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요.


그런데 어쩌죠.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내려야 할 시간이라 이번은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방금 뉴욕에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직관으로 보고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방금 도착했네요

는 아니고요.

(저도 그래봤으면 좋겠습니다 흑흑)


주방 설거지하다가 와서 쓰는 거라 마저 해야 하거든요.

거실 바닥도 치히로처럼 뽀득뽀득 닦아야 하는 일도 남았고요.


그래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대신 목욕탕의 즐거운 에피소드는 다음편에 할 것을 꼭 약속드리며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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