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다” (5)
살려달라는 용구의 눈빛이 눈에 밟혔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죽어가는 용구를 가만히 지켜봤다.
깜박거리는 가로등, 멀리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와 함께.
용구의 두 다리를 끌어 놀이터 벤치 밑에 숨겼다. 주머니를 뒤지니 비닐에 쌓인 소형 카메라가 나왔다. 카메라와 핸드폰을 챙기고 고개를 드니 가로등 옆에 설치된 CCTV의 빨간 불빛이 보였다. 사람을 불러 당장 고친다더니 정말 고친 모양이었다.
“열 시 전에만 돌아오면 아무도 모른다니까. 내일이지?”
어제 아파트 경비원 달수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계를 보니 9시 40분이었다. 경비실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책상에 놓인 목장갑을 끼고, 복숭아 깡통에 있는 담배꽁초 몇 개와 라이터 그리고 검은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었다. 우선 모니터와 연결된 코드를 모두 뽑았다. 순간 책상 앞에 펼쳐진 분할된 화면들이 블랙으로 전환됐다. 다음으로 꺼진 모니터 밑으로 CCTV 본체를 찾는데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본체는 경비실이 아니라 관리사무소에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유리판 밑에 프린트되어 끼워진 종이에 적힌 관리사무소의 비밀번호를 외웠다. 저 멀리서 술에 취해 돌아오는 달수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서둘러야 한다. 잽싸게 경비실을 빠져나와 고양이처럼 조용히 관리사무실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무실로 들어서니 한 구석에 컴퓨터 보안 시스템이라 적힌 본체가 보였다. 맥가이버 칼로 본체를 분해해 하드를 꺼내고,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부리나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완전범죄를 위해 할 일들을 하나하나 체크해봤다. 우선 관리실 옆에 있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칸막이 안 모서리가 깨진 타일 틈에 소형 카메라를 끼워 넣는다. 다음으로 재활용장으로 가서 폐식용유 드럼통에 불을 붙이고, 용구 핸드폰, 하드디스크, 라이터, 목장갑, 몰카 비닐까지 다 던져 놓는다. 마지막으로 놀이터로 돌아가 용구 주머니에 내 지갑과 시계를 넣어둔 후, 그 녀석의 나이프로 내 옆구리를 힘껏 찔러 넣는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계획대로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그 녀석의 나이프로 내 옆구리를 찌르는 순간, 고통과 슬픔이 동시에 몰려왔다. 옷소매를 당겨 칼의 지문을 닦고 소매로 칼끝을 잡아 용구의 손에 쥐어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112에 신고를 했다. 저 멀리서 여름의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다음 날 저녁. 병원으로 홍경위가 병문안을 왔다.
“외상이 깊지 않아 금방 퇴원할거래요.”
“그 사람은...”
“박용구는 사건 현장에서 사망했어요. 아무래도 조사 받으실 거 같긴 한데 검찰에서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리할 거예요.”
“...”
“박용구 그 새끼, 날 잡았더라고요. 여자 화장실에 몰카 설치하고, 관리사무소 CCTV 하드 없애고, 보통 주도면밀한 놈이 아니에요. 저 딴엔 CCTV도 없앴겠다, 완전범죄 꿈꾼 거 같은데, 하필 선배님한테 딱 걸린 거죠. 아깝다, 영상 있었으면 인터넷에 뜨고 영웅이라고 난리도 아닐 텐데.”
“집사람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드님이 소식 듣고 새벽에 귀국했어요.”
일주일 후 집에 돌아왔다. 소식을 들은 아들이 급하게 필리핀에서 돌아와 아내 태숙을 돌보고 있었다. 그새 태숙의 얼굴은 더 초췌해졌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밥상머리에 앉았는데 태숙은 먹는 것도, 나도 거부하는 시선이었다. 일주일 전과 뭔가 확연히 달라졌다.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못 먹겠어도 조금만 먹어봐. 다음 주부터 다시 요양병원으로 갈 거야. 이번엔 더 좋은 데야. 거기 가면 엄마 돌봐줄 사람 많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태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가기 싫어도 가야 해. 난 시작한 일 때문에 다시 필리핀 가야하고 아버지 혼자 엄마 돌보기 힘들어. 이해하지?”
태숙의 시선이 거실 한 곳, 내 퇴임식 사진이 걸린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던 아들이 사진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그러자 갑자기 태숙이 아들의 뺨을 때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도 아들도 당황해서 돌아보니 태숙이 아들과 나를 번갈아 노려보며 절규를 했다.
“왜 그랬어! 왜 이제 왔어! 왜 그랬냐구! 왜 이제 왔냐구!!”
다음 날 아침, 아내를 요양 병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대청소를 했다. 걸레질을 하는데 안방 구석에 리모콘이 부서진 채 놓여 있었다. 리모콘을 조립하고 보니 채널 버튼이 안으로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청소를 마치고 전자매장으로 향했다.
“리모컨만 살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가지고 계신, 티비 모델이 어떻게 돼요?”
알 리가 없다. 대신 직원에게 리모콘을 전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즐비하게 늘어선 TV 중 한 브라운관에서 매장 내부와 내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저건 뭐죠?”
“저거요? 매장 CCTV요.”
“저게 일반 테레비에도 나와요?”
“그럼요. 왜 아파트 같은 덴 엄마들이 애들 노는 거 보려고 놀이터 CCTV 채널이 따로 있잖아요.”
당황스러웠다. 혹시? 불안과 초조함에 심장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매장을 빠져나와 아파트 경비실로 향했다. 다짜고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달수에게 달려들었다.
“저기, 텔레비에... 저 쪽 놀이터 CCTV...”
말의 앞뒤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아, 놀이터 CCTV 채널요? 58번이요.”
“그게 집집마다... 나오는 거요?”
“일반 티비 쓰는 집만 나오고 IPTV나 케이블 티비 보는 집은 안 나와요.”
그러더니 파일 하나를 열어 보기 시작한다.
“일반 티비 쓰시는 집이 708호 뿐이네.”
“네?”
“어르신 집만 일반 티비 채널 쓰신다고요. 그러니까 저기 CCTV 고장 났을 때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지. 모르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찜찜했다. 달수가 말했다.
“CCTV 고친 다음부턴 계속 나왔을 건데. 어르신 놀이터에서 그 놈 잡은 거 생중계되고 있었을 텐데, 본 사람이 없으니.”
아내의 갑작스런 변화, 눈물, 고장난 리모콘. 집으로 뛰다시피 해서 돌아왔다. 리모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켜지는 텔레비전 속에 놀이터의 전경이 들어왔다. 용구가 죽은 그 자리에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봤구나!”
내가 아내를 무너뜨렸구나. 다리에 힘이 풀려 쿵 주저앉았다. 그때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정태숙 환자 보호자 되시죠? 정태숙님, 조금 전에 임종 하셨습니다.”
버스를 타고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몸을 태우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고 절규가 됐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3일 후, 태숙의 영정사진을 들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퇴임식 사진 옆에 그녀의 사진을 걸었다. 해질 녁 창에서 새어 들어온 붉은 노을이 집안에 스몄다. 밥을 올리고, 청소를 했다.
그저 그래야 한다는 듯, 다 그렇게 산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끝>
<드라마스페셜 2024>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bhN8d2Hh0
<드라마스페셜 그랗게 살다> 15분 순삭 다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