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부메랑 Apr 01. 2018

정신질환자를 배려하는 길

정신질환자들의 삶 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증 같은 정신질환 병명은 이제 그다지 낯선 전문용어는 아닙니다. 한국 사회도 빠른 사회 변화와 발전만큼이나 사람들의 신체 건강 못지않게 정신 건강도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많은 의지와 무게를 두어 세상 보는 눈과 인지의 틀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기에, 정작 정신질환에 걸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정신질환자들의 삶 속에서 무엇이 그들을 괴롭히며 그들의 삶은 왜 그토록 "회색 빛"이기만 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사람의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구조가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기도 단 한번 걸려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은 독감에 걸렸다고 며칠 동안 콜록거리고 콧물을 흘리고 심한 경우 밥도 못 먹고 결근까지 하는 동료 직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정신 질환"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류에 내담자의 증세와 이력을 적어서 기록하고 추후에 필요한 경우 다른 상담소나 병원으로 그 내담자를 소개할 때 그 내담자를 설명하기 위해 상담사와 의사들 사이에 약속된 공통 언어가 불가피하게 필요하기에 기술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정신 질환"이라는 말은 그 개인이 겪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감정적/인지적/육체적 소용돌이 상태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려서 통합시켜서 단순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그 용어는 그 사람의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기에는 그다지 섬세하고 적합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자분들도 그렇고 여전히 사회에서 특정한 증세를 보이며 비교적 비슷한 감정이나 행동 패턴을 보이는 분들을 DSM-5에 나온 기준과 진단명에 따라 "정신 질환"의 한 종류로 구분하여 부르니, 편의상 저도 그 용어를 사용해서 "정신질환자"들을 주변인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지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그분들과의 대화나 만남, 그리고 교류를 통해 느낀 바는 실제 그분들의 다양한 케이스와 증상을 다루기에는 빙산의 일각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주변분들이 이 글을 통해 그분들을 조금 더 배려할 수 있을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음을 알리며 양해를 구합니다.


(1) 실제 마음과 표정 사이의 격차와 불일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의 경우, 그분들의 마음(의도)과 밖으로 표현되는 표정/행동에는 굉장한 불일치 (Incongruence)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수 있으나, 예를 들어 공황장애 환우의 경우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거나 약간 불쾌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황장애의 증상은 실제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리 정확히 설명해서 느껴보게 하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공황장애를 경험하고 계신 분들은 마치 "텅 빈 소양강 댐 한가운데 서있는데 모든 수문이 활짝 열려서 모든 물이 자신을 향해 쏟아져 오는"느낌의 공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느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그런 공포 이상의 공포를 예전에는 긴장감은 커녕 오히려 즐겁게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기도 했던 장소나 상황(지하철, 비행기, 엘리베이터 등)에서 겪어야 하기에 당사자는 무척 진이 빠지게 되고 극도로 긴장된 상태로 굳어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의 눈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서려있고, 얼굴에는 웃음기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황장애 환우분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들에게 친구나 동료들이 먼저 다가와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 동료가 다가와서 말을 걸면 그런 공포에 질린 표정이나 어두운 표정으로 인사하고 반응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그 동료 분의 반응에 따라 그 환우분은 크게 격려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또 오해 받았네"하고 자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분들의 표정이 얼어있다고 해서 그 분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서는 분들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의지와 상관없이 표정이 그렇게 습관화되어서 마음과 표정 간에 불일치가 생긴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신질환자가 마음속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오해받는 경우는 공황장애가 아닌 다른 질환으로 고생 중인 환우의 일상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가령, 특정한 것을 몇 번씩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강박증 환우의 경우 어떤 서류를 제출하거나 함께 작업할 때 업무상 실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검토하고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행동이 상대 업무 파트너에게는 "이 사람 나를 못 믿는 거야?" "왜 자꾸 몇 번이나 확인하지?" 또는 "왜 이렇게 심각하게 나를 대하지?" 등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강박증 환우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목적과 이유는 상대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그 환우가 스스로 그렇게 해야만 만족이 되고 안심할 수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업무 능력을 못 믿어서도 아니고, 적대감이나 방어태세를 취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본인이 그렇게 몇 번 확인을 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박증 환우는 타인들이 자신의 그런 행동은 다소 기이하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기에 그런 행동을 하고 주변인들과 말하며 교류할 때 스스로 긴장해서 얼굴이 굳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표정과 그런 강박적 행동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쉽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가급적 편안하게 대하는 것이 그 분을 격려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분들은 프레젠테이션이나 일상 대화를 할 때 자신들이 하는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몰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도 반응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신 분들일수록 마음(의도)과 행동/표정 사이에 이런 불일치가 클 수 있다는 점 주지하시고, 표면적인 부분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말고 그 분의 의도와 말의 내용에 중점을 두어서 그 분들을 대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분들이 원하는 것은 주변인들이 자신들을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상하게 "오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의 변화

제가 정신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에 대해서 안타깝게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그 분들이 오랫동안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하면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삶의 기준과 원점마저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입니다. 정신질환은 그만큼 그 사람의 감정/사고/인지/육체 등 다방면의 원점과 처리방식 등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런 상황이 수 주내지 수 개월 이내에 깔끔히 정리되면 금방 다시 예전의 원점으로 돌아오겠지만,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공황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강박증의 합병 증세로 고생하는 환우는 그런 증세가 발병하기 전에 당연하게 여기던 기준이나 행동이 이제는 굉장히 낯선 기준, 또는 본인에게는 불가능한 기준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합병 증상을 가진 환우는 아침에 일어나 시내에 있는 카페로 가는 일이 굉장한 미션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나오기도 무척 힘들고,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할 때도 1시간 이상이 소요될 수 있으며, 카페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버스만 타면 공황장애 증세가 발생해서 괴로워지는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버스를 타기 전에 "잘 될 거야, 나는 괜찮아"같은 주문을 몇십 번은 읊고 버스를 타야 하며, 실제로 버스에서 공황 증세가 일어나면 버스에서 다시 내리기도 합니다. 물론 일반인들의 경우 주말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 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겠지만, 정신질환자들에게는 그런 식은 죽이 더 이상 식은 죽이 아닌 것으로 돼버린 것이죠.


따라서,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친구나 동료를 대할 때는 이런 점을 배려하고자 노력하면서, 그 분들만의 새로운 기준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물론 친구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야, 너 뭘 그런 걸 그렇게 걱정하냐, 당장 버스 타고 나오면 되잖아"식으로 말하며 친구의 증세가 빨리 변하도록 다그치는 것은 오히려 그 친구를 낙담시키고 모멸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친구도 자신의 기준이 예전의 기준과 달라졌고, 지금의 기준이 별로 건강한 기준은 아니며 본인이 빨리 다시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신질환자의 친구나 동료분들은 그런 정신질환자를 건강한 자신의 틀(Frame)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충동을 잠시 내려놓고, 그 정신질환자의 세계에 발을 딛고 들어와서 호기심과 존중하는 태도로 질문("이렇게 하는 게 더 편한 이유는 뭐야?"/"그렇게 하면 어떤 기분이 되니?" 등)을 하면서 상대방이 더 건강한 기준을 재확립할 수 있도록 협동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정신질환자들의 경우 인지기능/연산 기능을 주로 발휘하게 되는 회사에서의 일반 업무에서는 별 다른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정서적 측면을 주관하는 뇌와 신경계에 다소 불균형성과 비균등하게 통합되어 처리되는 경향이 생겨서 잠시 그들은 그 균형과 통합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우울증과 강박증의 합병증세로 고생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많은 치료가 되어 자신의 예전 행동 패턴과 현재의 행동 패턴을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한참 우울증과 강박증으로 고생할 때 쓴 일기에 쓰인 문구를 봅니다, "양치질하고 샤워하고 집을 나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그러나 나중에 그런 증세에서 호전이 된 이후에는 친구와 대화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양치질하고 샤워하고 집을 나서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양쪽 상황은 정반대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의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친구의 일과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친구의 마음 속에는 어느새 예전에 "정상적이고 당연하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안 장애와 우울증의 합병 증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마음 속에 끊임 없이 피어나는 불안과 우울함을 쫓아내는데 거의 하루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탕진합니다. 원래 그 친구는 당신보다 훨씬 유능하고 유머 감각이 넘치는 친구였을 수도 있습니다. 친구인 당신도 그 친구가 하루를 지나친 불안과 근심, 우울함에 휩싸여 지내기 보다는 예전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식당에서 함께 떠들며 농담도 하고 크게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겠죠. 그러면, 우선 그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섣부르게 판단하고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 친구의 현재 상황과 세계를 이해하고, 많은 질문을 해주세요. 그런 진정성 있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친구는 점차 자신이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바꾸어 온 "예전의 당연했던 기준과 상식"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도 더 이상 아침 기상과 함께 "불안" "우울함"을 가슴에 장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예전처럼 휘파람을 부르며 양치질을 하고 친구와 즐겁게 수다 떠는 생활을 당연한 삶의 일면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전보다 더 건강한 기준과 상식을 향해 나아가고자 몸부림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친구로서 그들이 그동안 충분히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불안해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웃어도 되고, 즐겁게, 그리고 보다 "쉽게" 삶을 살아도 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조금씩 알려주고 확신을 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옷차림과 위생 및 영양 상태

 제가 예전에 개인적인 일로 큰 상처를 받고 몇 개월 정도 그 일에 몰입해서 슬퍼하며 우울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주로 집이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고, 하루가 어떻게 가고, 한 달이 어떻게 바뀌고,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 지도 느끼지 못할 만큼 마음이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계속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화가에 있는 큰 백화점에 갔었습니다. 오랜만에 백화점에 와서 가게 사이를 걷고, 밝게 웃으며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걷다 보니 저도 조금은 힘이 나더군요. 그런데 뭔가가 조금 신경 쓰이고 불편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럴까?'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가게 점원들이 굉장히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걸어가고 있는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 옷은 내가 거의 2주 동안 매일 입었던 옷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곧바로 근처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았고, 눈 빛은 탁했고, 목이 늘어난 남색 티셔츠에, 주글주글하고 무릎 부분이 튀어나온 면바지에 오래 신어 탈색된 신발을 신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 저도 조금 낯설더군요. 그래서 백화점에서 나와서 중국집에서 간짜장면을 먹은 뒤, 주변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손톱과 발톱을 자르고, 미용실에서 헤어컷을 한 뒤, 다시 백화점에 가서 오랜만에 멋있는 옷을 두어 벌 정도 사고 신발도 하나 새로 사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대부분의 환우들의 옷차림이나 위생상태, 그리고 영양상태는 눈에 띄게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멋을 내는 생각은 이미 머리 속에서 떠난 지 오래고, 머릿 속에는 '빨리 이 질환에서 완쾌되어 예전처럼 성실하고 즐겁게 살아야 해'라는 절대 의무가 24시간 동안 가장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옷차림이나 위생, 또는 영양상태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없고, 신경을 쓰게 할 수 있는 식욕이나 과시욕 등의 본능도 많이 위축이 된 상태입니다.  


 만일 친한 친구나 동료가 이런 식으로 옷차림이나 위생, 영양상태에서 안 좋아진 모습을 보이면, 멀리 하지 말고 가끔은 "먹고 마시고 좋은 옷 입고 즐기고 사는 생활"도 할 수 있게 그런 영역으로 초대해 주세요. 정신질환자들은 정신 질환의 완쾌와 건강 회복에 대한 바람이 너무 큰 나머지 다른 것에는 일절 신경을 못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세차도 몇 달 동안 안 하기도 하고, 엔진오일 교체를 비롯한 자동차 경정비에도 일절 신경을 못쓰기도 합니다. 친구로서 그런 정신질환을 앓는 친구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분위기나 토픽을 바꾸어서 함께 백화점이나 식당, 사우나에 가서 삶을 함께 즐기는 것도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도 친구로서 늘 "너 기분 괜찮냐?" "너 이제 안 우울해?", 또는  "공황장애는 좀 어때?"같은 말만 하면 정신질환에 관련된 그런 대화 자체에 그 환우는 아예 질려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함께 바깥으로 나와서 더 이상 감정/기분/정신건강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고 옷 이야기나 영화 이야기, 또는 주식투자로 돈 버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동기 부여를 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저도 한참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제 주변에서 저를 진정성 있게 대하며 "요즘 잘 지내시죠?" "우울한 기분은 좀 괜찮으세요?", "우울하신데 잠은 잘 자나요?"같은 말을 하는 분들에게도 물론 깊은 고마움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저의 그런 증상을 전혀 모르시고 저를 자신들의 무리의 한 일원으로서 밝고 즐겁게 대해 주신 분들이 더 고마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어떤 동호회에 가입을 한 상태라서 가끔씩 그곳에 참가했었는데, 그 분들은 정신건강에 관심도 없고 우울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분들이었죠. 그런데 서로 굉장히 친했고, 제가 가면 이미 서로 농담하고 떠들고 있다가 저도 그런 자리에 스스럼없이 끼워주고 저에게도 이런저런 농담을 하고 껄껄거렸는데, 저는 그런 분위기가 제게 더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치 저도 그런 분들처럼 이미 건강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동호회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고, 다음 동호회를 기다리며 나름대로 옷차림에도 신경 쓰게 되고 그랬었죠.


지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옷차림, 위생상태, 그리고 영양상태 등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여건이 되신다면 주말에 맛있는 레스토랑에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옷도 하나 선물로 사줘보세요. 밝게 웃으면서요. 이런 행동이 "프로작"이니 "XX치료요법"이니 하는 전문적 치료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하면 더 따뜻하게 효과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아마 독자분들은 제가 제시한 이 세 가지 보다 더 많은 점들을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결국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 그리고 호기심이 그분들을 향한 배려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뒤에는 제가 제시한 것 이외의 점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 아름답게 배려할 수 있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배려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 교류와 대화를 통해 그들의 "아픔"이 훗날의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협동하면, 그것이 독자분들에게도 귀한 일생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이전 18화 정신 건강이란 무엇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