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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Jan 19. 2021

5. 봉사 시간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대학 졸업 때 봉사 시간이 필요하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몇몇은 그런 거 없었다고 했고 또 다른 몇몇은 필요했다고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4학년 때까지 봉사를 하나도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학기 내내 봉사만 하러 돌아다녔다고 하더군요. 졸업에 필요한 봉사시간은 32시간이었다며 누군가는 헌혈만 8번 했다고 합니다.


저도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전혈은 8주마다 한 번씩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피를 뽑는 거라고 보시면 되는데 10분이면 끝나더군요. 심지어 기념품도 줍니다. 그때그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화관람권이나 문화상품권을 받을 수 있죠. 그 외에도 혈장이나 혈소판 등 원심분리기를 통해 일정 성분을 추출하고 다시 몸에 넣는 헌혈도 있습니다. 붉은 피에서 샛노란 뭔가가 걸러지는데 보고 있으면 이게 내 몸에 있는 게 맞나 싶은 색입니다. 무슨 레몬주스 색 같거든요. 근데 이런 헌혈은 시간이 40분에서 1시간까지 걸립니다. 또 피를 뽑고 다시 넣기를 반복해서 이상한 느낌도 들죠. 뜨거운 피가 나가고 차가운 피로 돌아오니 몸이 약간 으슬으슬한 느낌입니다.


봉사 시간 4시간. 10분 동안 피를 뽑아서 받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학교를 졸업하는데 봉사 시간이 왜 필요한 걸까. 봉사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야지 의미가 있을 텐데 이런 강제성이 부여되면 봉사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봉사라는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 중,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위화라는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피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소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정우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인데 흥행에는 실패했죠.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해서 피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를 담았습니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소설이죠. 물론 아직 안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알고 있는 이유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찾아봤기 때문이죠.


매혈기라는 단어에서 저는 봉사를 떠올렸습니다. 졸업을 위해서 강제된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다양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섭니다. 헌혈의 집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거나 아름다운 가게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판매합니다.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봉사를 하게 되는 거죠.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건 봉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졸업에 봉사 시간이 왜 필요한 건지 졸업을 한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봉사를 하라고 시켜서 했으니 당연히 봉사의 의미를 모르죠. 그저 피를 팔아서 시간을 채웠을 뿐입니다.    


대체 졸업과 봉사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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