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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Jan 23. 2021

7. 체류

“코로나로 인해서 체류가 불가능하세요.”


한참 코로나 2.5단계로 인해서 매장에서 취식이 불가능하고 포장만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장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었죠. 체류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체류'.

     

그로부터 며칠 뒤인 오늘 연락이 왔습니다. 컴플레인으로요. 체류라는 단어가 불쾌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불친절과 불쾌감을 느꼈다는 구구절절, 기나긴 이야기였습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분명히 ‘체류’라는 단어를 말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서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체류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체류(滯留, Staying Behind)는 '특정 지역에 오래 머물러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또는 여객이 승차 대기 등으로 일정한 장소에 머무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한자를 살펴보면 막힐 체, 머무를 류를 사용합니다. 사물의 진전이 머뭇거리다, 여행지에 오래 머물러 있다 등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체류란 단어를 검색하자 연간 검색어로는 ‘불법체류자’라는 단어가 바로 밑에 나옵니다. N사의 검색 포털에는 그렇게 나오더군요. G사는 ‘체류연장’이 나옵니다. D사에도 ‘체류기간 연장허가 신청서류’가 나오네요. 녹색의 N사만 불법이라는 단어가 검색어인 체류보다 먼저 나옵니다. 그때 왔던 손님이 느낀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감인가 봅니다.


체류라는 단어 앞에 붙은 '불법' 때문에 '체류'마저도 오염된 단어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그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기에 컴플레인까지 하게 된 것이죠. 컴플레인을 할 정도로 불쾌한 걸 보면 단순히 체류라는 단어만의 문제는 아녔을 겁니다. 응대했을 때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냥 매장에서 쫓겨나는 느낌이라서 그런 듯 싶습니다. 일단 이번 사건에서 제 응대에 잘못된 점이 없었기에 이 일은 잘 넘어갔습니다. 사용하는 표현은 다른 걸로 바꾸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체류라는 단어가 불쌍했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검색에 붙어있는 꼬리표가 불법이라서 박해당하고 있으니까요. 친구를 잘못 둬서 함께 나쁜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문득, 내가 자주 쓰는 단어로도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는 1000개 안팎이라고 합니다. 책을 자주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그 범주를 벗어나긴 어렵겠죠. 사람마다 주로 쓰는 단어가 다르기도 하니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1000개의 단어로 살아가는 셈입니다. 누군가는 내 1000개의 단어 중 하나가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1000개의 단어 중 또 어떤 단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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