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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Feb 27. 2021

20. 아포가토

아포가토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아포가토는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 샷을 부어서 나가는 디저트의 일종입니다. 아포가토는 이탈리아어로 '빠트리다'라는 단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보통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사용하죠. 제가 일하는 매장에서는 바닐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둥그런 원형 아이스크림을 작고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습니다.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합니다. 제대로 추출되는 샷은 마치 꿀처럼 찐득하게 떨어지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샷 글라스에 샷이 떨어집니다. 시커먼 밑바닥을 하트, 갈색빛을 머금은 중간 부분을 바디, 포슬포슬하게 떠다니는 커피 오일을 크레마라고 부릅니다. 제대로 추출된 에스프레소 샷을 아이스크림 위에 끼얹어서 나갑니다. 이 아포가토를 나갈 때마다 20살의 기억이 늘 떠오릅니다.


저는 카페를 제대로 이용해본 적이 20살 때가 처음입니다. 그때 같이 갔던 사람이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서 나오는 디저트가 있다고 알려줬죠. 저는 그때 무슨 소리냐며 웃었습니다. 그럴 거면 커피 우유를 마시거나 커피 아이스크림을 먹지 왜 그걸 훨씬 더 비싼 돈 주고 먹냐면서요. 그때는 커피에 대해 1도 몰랐었죠. 라테와 아메리카노도 몰랐으니까요. 막상 카페에 들어가서 아포가토를 시켜보니 진짜 그런 게 있어서 민망했습니다. '아니, 이게 왜 있지?' 싶었죠.


실제로 아포가토를 먹어보면 커피 아이스크림과는 다른 맛이 납니다. 진하면서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느껴질 때, 달콤하면서 진한 바닐라 맛이 커피의 쓴 맛을 덮어주죠. 물론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면 커피 아이스크림 맛이 되어버리긴 합니다. 녹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하는 대표적인 디저트죠.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커피 메뉴에 대해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카페에서 일하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겠네요. 커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던 제가 처음으로 커피를 찾아보게 되었으니까요. 그저 믹스 커피, 스틱 커피만 마시던 제가 아메리카노와 라테가 무슨 차이인지 알게 된 순간입니다.

 

아포가토는 잘 안 팔리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한 개인 카페에서 없는 경우도 많죠. 아이스크림이라는 부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들기는 어렵고 사 와서 팔자니 꽝꽝 얼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둥글고 예쁘게 퍼서 나가기 힘듭니다. 근데 찾는 손님도 없다?  굳이 메뉴에 넣을 이유가 없는 거죠. 자주 나가지 않는 메뉴라서 그럴까요? 가끔씩 아포가토를 나 갈 때마다 그때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포가토가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이제 아포가토를 만들어서 파는구나. 그리고 그때 했던 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런 게 있으면 그 돈으로 커피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겠다.”     


사실 지금도 아포가토 보다는 커피 아이스크림을 선호하긴 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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