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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Feb 28. 2021

21. 닉네임

“왜 닉네임이 폴이에요?”


종종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제가 닉네임의 유래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하죠.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나름 외국계 회사라서 그럴까요. 상호 존대가 원칙이고 직원이라는 단어 대신 파트너라는 단어를 씁니다. 전 닉네임과 파트너라는 호칭이 나름 마음에 듭니다.


저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호칭으로 불립니다. 저는 지금껏 살면서 야, 너, 아들, 동생, 병장, 사우님, 파트너, 폴, 형, 오빠, 모임장 등으로 불렸습니다. 여기서는 글 도둑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니 이것도 일종의 닉네임이나 다름없죠. 저를 부르는 호칭이 정말 다양하긴 합니다. 그중에서 폴이란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쓴 닉네임이었습니다.


제 닉네임은 중학교 원어민 시간 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할 때,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한창 하던 격투 게임 캐릭터가 떠올랐습니다. 폴 피닉스라는 이름의 캐릭터였죠. 그 캐릭터를 자주 골랐던 저는 거기서 '폴'이라는 단어를 따왔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잘 쓰고 있죠.


제가 만났던 직원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닉네임은 웰컴과 베니였습니다. 웰컴이라는 닉네임은 정말 드물었죠. 웰컴이라고 지은 이유를 물어봤더니 자신의 이름이 ‘환영’이라서 직역했다고 합니다. 아주 멋진 이유였고 그 덕분에 웰컴이란 닉네임은 제 머릿속에 푹 박혀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베니 역시 독특했습니다. 닉네임이 왜 ‘베니’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사실은.... 제가 고구마를 좋아하는데요....”

베니는 아주 수줍게 고구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구마 품종 중에 베니 하루카라는 품종을 좋아해서요. 꿀 고구마로 보통 알려져 있는데 거기서 따왔어요.”


아, 그런 고구마 품종이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품종을 알고 있을 정도로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품종을 이름 대신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 두 명의 닉네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재밌는 이야기와 닉네임이 섞여있으니까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다 보니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불리는 호칭에 따라서 제가 지는 책임감이 달라지지 않을까. 독서모임에서 모임장으로 불릴 때와 일 하면서 폴로 불릴 때의 책임감의 차이, 아들로 불릴 때와 형이라고 불릴 때의 차이. 그리고 나를 부르는 호칭에 따라서 걸리는 기대감 또한 다르지 않을까. 과연 나는 호칭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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