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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r 02. 2021

22. 아아, 뜨아

“나는 아아, 넌 뭐 마실래?”


“나는 뜨아.”     


“아아 하나랑 뜨아 하나 주세요.”     


종종 이런 주문을 받습니다.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아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죠. 이런 줄임말이 나름 공적인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계산대 앞에서 자주 나옵니다. 생각보다 줄임말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임말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 인터넷에서 나온 다양한 신조어와 줄임말이 뉴스에 오르락내리락 한지는 꽤 오래되었죠.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튀어나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긴 단어를 줄이고 싶어 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는 타자를 칠 때 유독 심했죠. 인터넷에서는 이제 정상적인 단어보다 줄임말이 더 자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줄임말은 인터넷을 넘어서 현실 세계까지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겁니다.


카페에서 주문을 하는 건 공적인 영역입니다. 이런 공적인 영역에 줄임말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스마트 폰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화장실을 가던, 산책하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던 손에는 늘 스마트 폰이 쥐어져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하죠. 디지털 디톡스라는 단어가 탄생할 정도로 우리는 스마트폰과 늘 붙어있습니다.


줄임말로 카페에서 주문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줄임말이 현실에서도 튀어나온 게 아닐까요. 사람을 대하는 시간보다 인터넷을 대하는 시간이 많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만 쓰던 단어들이 현실에서 쓰는 단어보다 더 익숙하다면 그럴 수 있죠.


줄임말을 현실에서 사용하는 건 흔치 않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선 줄임말을 쓰거나 비속어를 써도 상관없습니다. 서로 대화가 통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줄임말은 서로가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단어를 축약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겁니다.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할 거라는 믿음이 깔려있는 거죠. 친구 사이엔 그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 이외에 관계에서 줄임말로 대화를 주고받게 되면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이나 직장 상사과 대화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물론 빠르게 적응하시는 어른들도 존재합니다만 대다수의 중장년층은 줄임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문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대뜸 ‘아아 하나요’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라고 되물어보게 됩니다. 어쩔 때는 ‘아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럼 ‘네?’라는 반문이 튀어나오죠. 이는 서로의 신뢰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끼리 축약된 단어로 의사표현을 했기 때문입니다. 뜬금없기도 하고 무례하기도 하죠. 이를테면 처음 보는 사람의 등을 툭 치면서 '야'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줄임말에 대해서 알고 있더라도 아주 짧은 단어로 주문을 하면 잘못 듣기 마련입니다. 카페는 다양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니까요.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 커피 그라인더의 소음과 진동, 믹서기의 소음은 정상적인 대화도 잡아먹곤 합니다. 특히 ‘아아’라는 아주 짧으면서 같은 음절을 반복하는 단어는 소음에 파묻혀버리기 쉽죠.  알아듣기 참 힘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아 하나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답해보고 싶습니다.


“사어하?”, “결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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