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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r 05. 2021

24. 이유

“폴은 어쩌다가 카페에서 일하게 됐어요?”


직장 동료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가 여기에서 커피를 팔고 있을까요. 카페에서 일하게 된 계기를 찾기 위해서는 20살 때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20살의 저는 대학교 대신 취직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특성화 고등학교였기에 취직이 쉬운 편이었습니다. 원래는 대학교 진학이 목표였지만 제가 원했던 대학교에 전부 떨어지고 추가 합격 발표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조선소에서 사내대학 과정을 지원하면서 일도 배우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중공업 사관학교’라는 프로젝트였고 저는 2기생으로 덜컥 지원했죠. 그리고 합격하고 나서 정신 차려보니 거제도의 조선소였습니다.


입사 당시의 조선업은 한창 잘 나갔습니다. 저는 조선소에서 어떤 분야의 일이 저에게 맞을지 고민하면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서 조선소의 일에 대해서 배운 뒤, 군대를 다녀왔죠. 21개월의 육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제 회사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주식 거래는 정지당했고 현금이 없어서 직원들에게 주식으로 월급을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분식 회계로 인한 벌금을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많은 희망퇴직자를 받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퇴직 인사 메일을 받았습니다.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우울한 회사 분위기가 시커먼 바닷물처럼 흐르고 있었죠.


그 속에서 저는 ‘생산지원부’에서 일했습니다. 소모품을 사서 지원해주는 일이었죠. 회사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 싸우면서, 욕먹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확 줄여버린 예산 때문에 생긴 갈등이죠. 그때의 저는 금요일 저녁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부터 불안했습니다. 조선소는 24시간, 365일 내내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소모품이 없다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밤에도, 그리고 낮에도. 그래서 전화가 오면 불안했습니다. 주말에는 더 심해졌죠. 전화를 받고 전화를 돌려서 남는 소모품을 지원해주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있는 부서의 일은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저에게 잘 맞지도, 재밌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할 뿐이었죠. 아주 열심히.


그러던 중, 제가 일하는 부서를 자회사로 독립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뜬금없이 하청 업체 직원이 되어버릴 판이었죠. ‘여기서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서 이동을 신청했습니다. 함께 공부하며 지냈던 동기들을 통해서 부서를 찾았고 그 부서 사람들과 보직까지 이야기까지 싹 끝내 놨죠. 근데 부서 이동도 실패했습니다. 더 이상 남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에서도 이렇게 실패할 수 있구나. 그럴 거면 차라리 좋아하는 일에서 실패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퇴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제가 좋아하는 건 책이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그런데 그걸로 밥 먹고 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그러던 중, 북카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페엔 커피 향과 책으로 가득했죠. 이런 북카페를 차리고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카페를 차려보자’라는 결론이 나왔죠.


문제는 제가 지독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카페라는 시장은 정말 포화상태로 보였습니다. 하나의 카페가 망하면 두 개의 카페가 생겨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또 실패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카페에서 일하는 게 어떤지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퇴사를 하고 미운 정이 들었던 거제도를 벗어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서 일해봤는데 잘 안 맞는다면? 그래서 보험을 하나 더 들기로 했습니다. 뒤늦은 대학교 진학이었죠.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온 덕분에 야간대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참 밀어줬던 ‘선 취업, 후 진학’이라는 프로젝트였죠. 카페에서 일을 시작하고 동시에 대학교 생활도 시작되었습니다. 낮에는 바리스타, 밤에는 대학생이었죠. 그렇게 저는 카페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동료가 물었을 때, 저는 몇 초간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바쁘게 일하는데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들려주긴 힘들었습니다.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여기 있네요. 하하..”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꼭 이야기해야지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몇 초의 시간 동안 저는 거제도에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서 지금이 더욱 소중했죠.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커피를 팔고 있으니까요. 창업을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어쩌다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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