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_나와의 대화
(2020. 2. 26 8:54)
내 방에는 뚜껑이 없는 휴지통이 하나 있다.
책상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아침에 책상에 앉아서 휴지를 쓰고
아래쪽에 있는 휴지통에 휴지를 넣으려다가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휴지통에 휴지가 위치하게 되는 순간
휴지는 쓰레기가 된다는 점이.
분명 조금 전까지 세상 깔끔한 척
나의 코며 입이며를 닦아주던 존재가,
나의 피부 어디를 닿아도 흔쾌히 내어줄만큼
신뢰받던 존재가
그저 위치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손바닥 뒤집듯이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서는,
세상 더러운 존재가 되어
닿기에도 꺼림칙한 취급을 받게된다는 것이.
좀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지는 그냥 처음부터 그 존재였을 뿐인데
놓여진 위치에 따라
가장 내밀한 곳까지도 망설임없이 내맡길 정도의
신뢰를 받다가
닿기만 해도 찌푸림 받으며 청결을 위협하는 존재의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도
시사해볼 만한 부분이 매우 많은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저 위치해있을 뿐인데
그 작아보이고 별것 아니어보이는 차이가
하늘과 땅끝 차이를 만들어낸다 ...
어떤 의미로는 살짝 무서운 기분까지 든다.
나는 잘 '위치'해 있는가 ...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말고
나의 위치를 둘러보아야겠다.
휴지가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겠지만
지금 여기가 휴지통인지 책상 위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최선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