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치병 아이가 엄마 구두를 신으면

by 갓진주


불치병의 끝

나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닉네임을 자주 바꾸고 싶어지는 병.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멋진 이름을 찾고 싶은 욕망이 출렁인다. 현실에서의 내 이름을 결정할 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불릴 이름은 내가 정할 수 있다보니 더 완벽하고 싶은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갓진주’라는 닉네임을 정해놨지만, 어색함이 목구멍을 조여온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 구두를 신은 듯, 발걸음마다 흔들린다.


멀리서 보면 장밋빛 인생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시궁창이라고 했다. 나의 하루는 뻘짓으로 점철된다. 어제는 피로감에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다그쳤고, 오늘은 엉뚱한 사람에게 업무 메일을 보내고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갓진주"라기엔 정말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뻘진주"에 가깝다.


갓진주든 뻘진주든, 진주라는 건 사실 조개의 상처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조개는 속에 들어와 이리저리 상처 내고 돌아다니는 모래알을 2~3년간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의 파도에 깎이고, 분비물들로 층층이 코팅하여 비로소 빛을 낸다. 상처받은 자리마다 광택이 덧입혀진다. 나의 뻘짓도 그러한 화학 공정이리라. 이제 실패의 쓴맛이 입안에 남을 때마다 음미하려 한다.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내일의 광택을 위한 밑칠인 것을 알게 됐으니까.



이름에 대한 세가지 생각

1) 이름은 씨앗이다.

땅에 던져진 순간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흙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아도, 썩어 없어지면 비로소 싹이 틀 것이다. 지금은 어색하고 조금 과분하게 느껴지지만, 오래 불리우면 내 피부에 스며들 것이다. 내가 정한 이 이름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이름에 걸맞도록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2) 자고로 이름은 주문이다.

"넌 반드시 이렇게 될 거야"라고 속삭이는 마법의 말들. 온라인 닉네임은 어쩌면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입으로 불리울테니까. "갓진주"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3) 이름은 입는 옷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식물과 같다. 매일 물을 주고 볕을 들여야 비로소 잎이 피어난다. 내가 "갓진주"로 불릴 때마다, 그 이름은 나를 조금씩 잠식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잇는 다리 위를 걸어간다.



이불킥이 쌓이면 ‘킥’이 되겠지

닉네임을 바꾸던 그 수많은 순간들, 실패에 주저앉았던 밤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감… 그 모든 순간이 조개 속 모래알이다. 아프지만, 이 아픔 없이는 진주도 없다. 상실감은 성장을 재촉한다. 지금의 뻘진주는 미래의 갓진주를 위한 필수 중간 물질이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일도 육아도 내팽개쳐두고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이번 생은 무효라고 다 엎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리지 않고 걸어보기로 했다. "갓진주"라는 이름으로 오래오래.


심리학자 칼 융은 "의식적인 선택이 무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내가 스스로를 "갓진주"라 부를 때, 그 이름은 점차 나의 무의식에 새겨진다. 셀 수 없이 많은 후회로 얼룩진 나의 이불킥들이 그 언젠가 ‘와, 저 사람은 킥이 있어’라는 말을 듣게 할 것이다. 어제의 뻘짓이 오늘의 교훈이 되고, 오늘의 어색함이 내일의 당당함이 된다.


“길은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그것’으로 지금부터 나를 불러보자.


나에게 어색한 이름은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구두를 신은 것처럼 걸음마다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발은 금방 자라고 신발은 신을수록 나에게 맞춰지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