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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고, 커리어를 잃었다?

일을 사랑하는 나에게 더 사랑하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

by 갓진주


어제의 도파민은 오늘의 피로가 되었다


한밤중 아이는 아파서 칭얼대고 나는 강의 자료를 마무리해야 했다. 아이를 눕힌 흔들의자를 발로 까딱이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득 강남 모 어학원에서 새벽 6시 반부터 밤 9시까지 강의를 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무엇도 멈추지 못했다. 쉴 때도 유용한 영어 표현을 발췌해서 알려주려고 여러 매체들을 훑기 바빴다. 나는 알고 있는 걸 나누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나는 매 순간을 사랑했다. 도파민이 팡팡 터졌으니까.


그런데 이제 너무 피로하다.


고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학원 운영, 대형 학원 강사까지 하고 싶은 일이고 즐거워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나에겐 힐링 그 자체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또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은 늘 "일이냐 가족이냐"를 저울질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강의는 나에게 우선 순위가 될 수 없었다.


수업은 다수와의 약속이라 결강을 하고 나면 또 강사로서의 극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나 스스로도, 나를 잘 아는 지인들도 나는 참 천상 선생이라고 했었는데… 열정은 점점 무뎌졌고, 마침내 내 커리어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오지랖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코로나가 모든 걸 바꾸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지하철을 타고 사람 많은 중심지에 있는 대형 학원으로 매일 출근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결국 강의를 쉬기로 했다. 맞벌이로 쭉 살아오다가 외벌이 수입으로 1년 정도를 지내려다 보니 우리집 가장이 버거워 하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도 빠듯한 날들이 이어졌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아기를 업고 마트에 나가 캐셔라도 할 순 없나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온라인으로 소규모 영어 강의를 시작했다. 한 번은 영어 강의를 하던 중 챗GPT를 소개했다. 영작을 교정받을 수 있는 방법, 회화 연습할 수 있는 방법,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모의고사 문제 무한정 뽑을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려줬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외국에 사는 한 수강생은 본인 영작을 챗GPT에게 첨삭받은 뒤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사소한 질문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늘 답답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튜터를 얻은 기분이에요."


사실 챗GPT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 같았지만 학생들에게는 내가 그저 고마운 대상이었다. 좋은 건 또 알려주고 싶은 오지랖 때문에 시작된 작은 시도는 곧 책 집필 제안과 강의 섭외로 이어졌다. 또 AI 강의 후에는 신세계를 맛보게 된 학생들의 칭찬 세례가 쏟아졌고 업무에 또는 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후기가 들려왔다.


내 일이 새로운 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AI 강사로서의 첫 걸음은 서툴렀다. 나는 관련 분야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었다. 여러 자료를 읽고 공부해가며 초보자들에게 AI 사용법과 사용 사례들을 소개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영어 강사로서의 경험으로 강의안 제작과 티칭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AI 교육에 녹여낼 수 있었다.


특히 영어 실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AI 도구와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용례를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확인하는 데 유리했다.


아주 초기라 챗GPT를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이제 막 시작하는 강사라 하더라도 기존에 13년 경력의 영어 강사로 받던 시간당 강의료를 훨씬 높게 책정받았다. (한편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도 워킹맘으로서 너무 좋았던 것은 내 일정을, 나아가서는 삶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더 두고 볼 일이긴 하다.)



길을 잃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얻은 후 커리어를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아이를 아주 사랑하지만, 나는 내 일도 너무 사랑한다. 아니 사랑했었다. 그런데 더 사랑하는 존재가 나타나니 어쩔 수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 둬야 하나’

‘여지껏 쌓아왔던 것들은 다 무슨 의미인가’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라는 작은 인간 둘이 잠들고 나면 여지없이 이런 생각에 잠겼다.

13년 동안 걸어오던 길이 끊어져 버렸으니까.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 도구와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먼저 발견한 가능성을 나누고, 그것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 그것이 내 길이다. 그 내용이 영어든, AI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갖고 있는 것을 잃는 순간, 가던 길이 막히는 느낌이 드는 순간,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끝에서 깨달은 것은 '이렇게 비로서 더 넓은 지도를 얻게 되는 것이구나'였다. 늘 익숙한 반경에서 지낼 때는 보지 못할 지도말이다.


13년간 나를 정의하던 '영어 강사'는 잃었지만, 지금의 나는 더 사랑하는 일을 만났다.

(현재로서는) 또 언젠가의 나는 더 더 사랑하는 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길은 잃었지만, 당황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그것을 나누며 다른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었다. 길은 잃었지만, 그것이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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