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 감독. 이니셰린의 밴시
멀리 산너머에서 전쟁의 포성이 그치지 않는 마을, 콜름(브렌단 글리)은 파우릭(콜린 파렐)을 피한다. 파우릭은 이유를 모른다. 몹시 서운할 뿐이다. 미치도록 괴롭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가가니 콜름은 협박한다. 너와 말할 때마다 내 손가락을 모두 잘라버리겠다고.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너와 이야기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낭비였다고. 남은 시간 동안 말을 아끼고 영원히 남을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콜름은 인구수 적은 시골 마을에서도 지적이고 예술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어 인기가 많았다. 파우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와 말을 안 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파우릭은 콜름에게 매달린다. 집착한다. 제발 다시 나와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드넓고 황량한 동네지만 다니는 길은 정해져 있었고 두 사람이 애써 피하는 일은 번거로웠다. 파우릭은 콜름을 찾아가고 콜름은 자신의 오른쪽 손가락을 모두 잘라 던진다. 콜름이 그토록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손이었다. 작곡을 하는 손이었다. 하지만 가차 없이 절단한다. 파우릭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경악한다. 콜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 없는 손을 힘차게 흔들며 바이올린 연습을 돕는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우울감에서 한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은 파우릭을 한없이 아끼면서도 희망 없는 이 마을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파우릭과 가까운 청년 도미닉(배리 케오간)은 경찰관인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학대당한다. 이런 환경이지만 파우릭은 익숙한 여기를 좋아했다. 키우는 동물들을 사랑했고 이웃의 동물들도 동일하게 아껴주었다. 파우릭은 자신이 지루하고 조금 바보 같다는 평판을 싫어하고 부정했지만 콜름과 다시 대화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콜름은 마음과 입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콜름은 수렁과 같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도 이러한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콜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학뿐이었다. 세계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자신의 일부라도 절단해야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파우릭이 자신을 피하던 콜름을 적대하게 된 계기는 아끼던 동물이 죽는 사고 이후였다. 복수를 위해 파우릭은 살인 예고를 하고 경고한 대로 콜름의 집을 완전히 불사 지른다. 파우릭은 아끼던 (동물) 친구를 잃고 콜름은 자신의 작은 세계를 잃었다. 인생의 중요한 일부를 상실한 둘은 거대한 바다 앞에 나란히 선다. 하나가 죽거나 둘 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산너머 포성은 멈췄고 둘은 어색한 몇 마디로 건조한 화해를 나눈다. 앞으로도 둘은 여길 떠나지 못하고 각자 숨을 거둘 것 같았다. 파우릭은 주어진 것들 안에서 사랑할 것들을 찾고 있었고 콜름은 주어진 모든 것들에게 지독한 증오를 느끼며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현실과 사후를 각자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이 같은 길 위에서 생각의 합의를 이르기는 너무 어려워 보였다.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누구도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파우릭만이 보이지 않는 것을 욕망하며 괴로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겐 보이는 사람과 친분을 맺고 가까운 동물들에게 말을 거는 일이 생에 가치 있는 전부 같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면 피를 보는 일은 좀 더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인간은 자신을 너무 증오해서 가까운 상대까지 적대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