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감독. 독전 2
영화는 죽음에 기댄다. 너무 자주 기대어 죽음이 영화에 기대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다. 편집된 허구의 삶을 담은 영상 속에서 너무 많은 자들이 죽고 다친다. 웃으며 나눈 대화가 언제 유언이 될지 모른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목적으로 향하는 루트를 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된다. 예외는 없다. 뒷걸음치다 모르고 길을 막거나, 애가 아프다고 전화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퇴근할 수 없던 어떤 사내(정준원)의 경우도 예외는 없다. 남의 인생 돌보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경우가 여기는 없다. 나 살자고 발악해도 단숨에 목이 날아가는 곳. 과거에 죽은 자들이 어쩌다 대화에 소환되어도 전혀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들 타인이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뭔가를 쫓고 있고 그걸 쫓다가 생이 파괴 당하고 그러다 판단력을 상실하고 그러다 뭐를 쫓고 있었는지 망각하고 그 대가를 자신의 목숨으로 치른다.
처음엔 자신의 선택과 결정, 주변의 희생이 정당해 보였다. 거악을 척결하는 일엔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자가 자신을 돕는 자들이었다. 원호(조진웅)는 생과 업의 목적이 일치할 정도로 간절했지만 주변인들은 그 정도가 아니어서 도구로 쓰이다가 처참히 갈갈이 주먹과 총탄에 몸이 찢겨 죽었다. 그의 죄책감은 한도초과가 되었다. 물러설 생각도 없었지만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형체가 없는 이름을 하염없이 쫓는 삶. 시체 더미 속에서 그는 피로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모든 집중력을 오로지 하나의 대상, 하나의 과녁으로 정했다. 악으로 규정한 대상을 쫓다가 모든 것을 쏟아붓고 그 악의 최후를 자신의 생의 최후로 정했다.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기어이 먼 곳까지 찾아간 거겠지. 죽기 위해서. 스스로 끝내기 위해서. 더 이상 목적이 사라진 삶, 동력이 고갈되었다. 그에겐 평범한 행복만큼 무가치한 게 없었다.
락(오승훈)도 비슷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선생에게 속아 마약에 절여져 죽은 자기 부모들은 과연 이렇게 장대한 복수의 서사를 펼칠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이었을까. 자신은 어쩌면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삶의 이유를 뭐라도 찾으려다가 복수로 정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원망이 분노로 분노가 증오로 증오가 계획으로 계획이 추진으로 추진하다가 대량의 마약 제조로 모두의 삶을 폐허로 만들고 이 과정에 얽힌 자들을 제거하고 이 과정 속에서 복수의 대상에 집중하다가 결국 스스로가 세운 벽에 가로막힌다. 이렇게 발악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고 부모의 복수는 가상 세계의 레벨업 같은 무의미한 명분이었으며 결국 급하게 들어 올린 마지막 총구는 자신에게 겨눈다. 왜 태어났을까... 를 묻다가 시체 냄새를 끝내 털어내지도 못하고 죽기로 결심한다. 말 못 하고 앞 못 보는 불쌍한 친구들(이주영, 김동영)만 남기고.
큰칼(한효주)은 오히려 순수했다.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아빠도 아닌 괴물에게 아빠 아빠 거리며 사람 모가지 잘라 인정받고 마약 팔아 인정받고 싶어 했으니까. 오히려 큰칼의 최후는 원인과 결과의 궤적이 뚜렷했다. 제발 아빠라고 계속 부르게 해달라고 매달리다가 아빠라고 부르던 미친놈에게 죽었다면 죽어서 눈을 못 감았을 텐데 적어도 그는 아빠에게 (생애 단 한 번이라도) 다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방방 뜨다가 한방의 기습으로 지옥문에 착지했다. 원호와 락은 식은 연탄재 보듯 큰칼을 비난할 수 없다. 누군가를 향해 저렇게 뜨거워 본 적 없을 테니.
독전 2는 싸우고 싸우다 죽일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최종 표적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안젤리나 졸리가 방아쇠를 당겼던 원티드의 휘어진 총알이 자신을 향했듯. 요즘은 먼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죽이든 살리든 우주의 관점에서는 먼지들끼리 먼지를 일으키는 정도겠구나. 우주에서 지상의 먼지를 바라볼 일은 희박하겠지만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에 이르려고 몸부림치는 감정의 파동들이 모두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 보인다. 총알이 이마에 박히든, 부모가 저지른 죄의 정체도 모른 채 낯선 자에서 살해당하든, 눈 덮인 먼 타국까지 기어이 달려와서 상대의 빈 탄창을 확인하고 뒤통수가 뚫리든. 그럼에도 남은 자들의 삶은 궁금하다. 입과 눈을 잃은 채 서로를 돌보는 자들의 남아있는 나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