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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벙커, 마약과 아동을 팔아넘기는 해커들에 대하여

막스 라이너, 킬리안 리프 감독. 사이버벙커: 크리미널 언더월드

by 백승권

본인 자유를 지키고자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한다니

이게 그런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자유를 얘기할 때 자기 자유만 말하는 거죠.


간섭받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망은 현대인의 본성에 가깝다. 인터넷은 이런 자유로움의 실행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책임을 놓아버렸다. 주변에서 허둥대며 제어 장치가 늦게 발동되는 동안 해커 집단 사이버 벙커의 (자유로운) 비즈니스는 세계를 조롱하며 범죄 영역을 온라인으로 확산시켰다. 직원으로 잠입한 요원을 통해 사이버 벙커 구성원들이 체포된 후, 사이버 벙커를 거친 범죄 조직에서 압수된 펜타닐만 해도 500만 명을 죽이기 충분한 양이었다. 사이버 벙커를 거친 범죄 중에는 아동 음란물도 있었다. 사이버 벙커를 창설한 수장(헤르만 크센트)은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할 뿐 뭐가 거래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웃기는 소리다.


이들의 탄생부터 구속까지의 이야기를 사이버 벙커 핵심 구성원 및 수사관 인터뷰를 통해 다룬 넷플릭스 사이버벙커: 크리미널 언더월드의 구성은 단순하다. 괴짜 해커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해 온라인 범죄를 방조한 후 긴 수사와 재판을 거쳐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받는 이야기. 하지만 팩트 전달에 그칠 뿐 경고나 방지에 대한 대책은 없다. 감춰진 온라인 루트를 통한 실제 범죄 활동과 규모가 가시화될 때까지 방치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파장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으며 다시 유사 플랫폼에 의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발각된 들 명확한 처벌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수사부터 입증, 판결까지 장시간이 소요된다. 범죄의 양상이 바뀌면서 법도 바뀌고 있고 그 사이 범죄자들은 유리한 입장에 서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사이버 벙커와 유사한 범죄 네트워크가 활개치고 있다고 해도 잔잔한 수면으로 보일 뿐 어떤 움직임으로 헤엄을 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인상적인 건 사이버 벙커 핵심 간부가 자신들의 범죄를 대하는 태도다. 이건 마치... 과거 갱단 두목이 자신들은 지하 경제를 움직이는 주축으로 여기고 있는 것 이상처럼 보인다. 자신들은 물리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거대 범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 범죄의 일부이자 범죄 자체라는 자각이 거의 없다. 오히려 현재의 시스템과 체계를 향해 크게 비웃는다. 그들은 인터넷이 잉태한 무한 자유를 믿으며 살면서 그 안에서 마약과 아동 대상 음란물을 거래하는 네트워크를 지원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사이버 벙커 일당들은 서로가 완전히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인터넷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다루는 구성원일 뿐 그 안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 수많은 무명의 피해자들에게 어떤 채무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의도한 무감각인지 애초부터 전혀 의식이 없는 건지. 그들의 지인이 마약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그들 자신의 성행위가 담긴 이미지 원본이 검색을 통해 발견되어도 똑같이 반응할 수 있을까. 그때도 그저 벙커에 숨어 모닥불 주위에 모여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까. 이들의 무지를 깨우쳐주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강력한 수위의 처벌 시스템을 구축해 확산 속도를 줄이는 게 나을 것이다. 인간의 갱생에 대한 믿음이 옅어진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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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