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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담보대출 출시, 급전 빌리고 목숨으로 갚으세요

보리스 쿤츠 감독. 패러다이스

by 백승권

인간이 인간으로 불린 이후로 시간이 거래 대상이 아닌 적이 있었을까. 인간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어서, 타인의 시긴이 투여된 결과물을 자신의 시간이 투여된 결과물과 거래했다. 물론 각자가 동일한 형태로 축적된 가치를 주고받는 일은 드물었다. 거액을 유산을 상속받는 자가 있으면 거대한 가난을 대물림하는 자도 있었으니까. 흔히 자본가들은 다수의 노동자들의 시간을 착취하며 애초 작지 않았던 눈덩이를 더 크게 만들었고 노동자들의 눈덩이가 커지는 속도는 비교적 느렸다. 자본가들이 그렇게 불린 자산으로 병원을 자주 오가며 수명을 연장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지며 남은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통계적으로 평균적인 삶의 질은 상승했다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러지던 다수는 그 통계를 마주할 일이 드물었다. 계층과 노동이 존재했을 적부터 노동자들의 수명은 자본가들의 수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근 미래를 다룬 패러다이스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남은 수명을 일부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내거나, 남은 수명을 담보로 호화로운 집을 살 수 있는 세상. 하나의 생명공학 테크기업이 이러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자들을 대상으로 수명과 돈의 거래가 이뤄졌고 이렇게 획득한 수명은 상위 1만 명의 부유층의 불로장생을 위해 옮겨졌다. 예를 들어 가진 자본의 크기에 따라 70세의 노인은 단숨에 30세의 청년이 될 수 있었다. 그에게 수십 년을 선사한 어느 극빈층 10대는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가난한 동네를 벗어날 수 있다는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듣고 거래에 동의해야 했다. 실상 합법화된 장기매매와 다를 게 없었다.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수명을 이식받은 부유층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고 있었다.


막스는 다수의 수명 거래를 이룬 우수 직원이었다. 어느 날 집이 송두리째 불타고 아내가 이 집을 위해 남은 수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운명이 뒤집힌다. 아내의 수명 거래는 단숨에 집행된다. 거울 속엔 막스(코스챠 울만)와 할머니가 된 아내가 서글프게 서 있었다. 아내의 수명은 막스의 회사 대표에게 이식되었다. 막스가 그동안 이룬 모든 삶이 붕괴되고 있었다. 막스는 불법으로 아내의 수명을 되돌릴 방법을 찾는다. 납치 범죄를 저지르고 신분증을 위조하고 시술할 의사를 수소문하고 돈을 보내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납치 대상과 아내의 수명을 바꾸는 게 목적이었다. 자신들이 빼앗긴 수명을 타인의 수명을 빼앗아 채우는 방식이었다. 양심과 정의는 허상이었다. 아무 죄 없는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아무 죄 없는 남을 죽이는 게 상식이었다. 죄책감은 목숨과 바꿀 따위가 아니었다.


안티에이징은 만인의 간절한 소망이다. 이미 젊은 생명의 혈액 주입을 통해 노화를 늦추려는 실험은 미국 듀크대 의대와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들을 통해 빈번하게 보고 되고 있다. 조만간 인간을 대상으로 실현 가능해져서 시장이 형성된다면 패러다이스 같은 일은 그저 픽션이 아니게 된다. 혈액 담보 대출이나 혈액 매매를 이렇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데 보이지 않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수명 매매라는 설정만큼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사는 쪽이 될까 파는 쪽이 될까 어느 쪽이든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은 부품 교체 및 SW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이 유지되는 기계와 다를 게 없다. 폐기되는 속도를 늦추려 발버둥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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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