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캠피온 감독. 피아노
모녀가 하늘에 닿을 듯한 파도를 뚫고 낯선 육지에 도착한다. 플로라(안나 파킨)는 어렸고 에이다(홀리 헌터)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짐과 같이 온 피아노는 육중했고 옮겨지지 못했다. 에이다는 파도와 바람 사이에 놓인 피아노를 한참 바라보았다. 피아노는 에이다의 정신이자 감정, 언어와도 같은 존재였다. 새로운 남편 스튜어트(샘 닐)는 그런 에이다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을 수 있는지 그 생각뿐이었다. 베인즈(하비 케이틀)는 스튜어트의 고민을 해결해 줄 중재자 같은 역할이었다. 베인즈는 원주민의 토지 거래에 대한 조건으로 에이다의 피아노를 갖기로 한다. 스튜어트는 동의한다. 에이다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탐욕에 눈먼 거래였다. 베인즈는 피아노가 에이다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베인즈는 피아노 교습을 목적으로 에이다를 초대하고 파괴적인 제안을 한다. 과거이자 영혼, 생의 모든 것, 감정과 정신의 언어를 표출할 수 있는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에이다는 베인즈의 어떤 제안도 거절할 수 없었다. 피아노 건반 하나씩 하나씩 다시 에이다의 것이 될 때마다 베인즈와 에이다의 물리적 감정적 간격은 조금씩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긴장과 떨림, 침묵과 격정, 흥분과 열망의 선율 속에서 베인즈와 에이다는 수화와 목소리 없이도 교감할 수 있었다. 스튜어트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에이다는 베인즈를 향한 맹세를 피아노 건반에 은밀하게 새기고 그 대가로 손가락을 잃는다. 스튜어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에이다를 소유할 수 없고 에이다는 끝까지 자신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이 관계는 어떤 강압으로도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에이다(그리고 플로라)와 베인즈는 낯선 땅을 떠나 돌아오는 배에 오른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육중한 피아노를 배에 실어야 했다. 모두가 말렸다. 위험해, 두고 가게. 베인즈는 끝까지 원한다. 에이다에게 어떤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거기에 피아노는 베인즈와 에이다를 하나의 선율로 이어 준 매개체였으니까.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에이다의 생각은 달랐다. 배가 무거워져 아무리 노를 저어도 더디게 물살을 헤치고 있을 때. 에이다는 마음을 정한다. 피아노를 버리겠다고. 강한 의지로 원한다. 에이다가 처음 피아노를 그렇게 원했듯 버릴 때도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피아노가 심해로 가라앉으면서 빠르게 풀리는 밧줄이 에이다의 발목을 감는다. 에이다는 한때 이 피아노와 자신을 같은 운명처럼 다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피아노가 없더라도 기어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지금은 하나 더 생겼다. 에이다는 강한 의지로 발목의 줄을 풀고 수면 위로 돌진한다. 마치 침례 의식을 이행한 듯 에이다는 새롭게 부여받은 생명력으로 가득해 보였다. 오랜 과거는 물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손가락, 새로운 피아노, 새로운 사랑과 함께. 30년 전 작품을 최초로 경험하며 영화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보여줬던 제인 캠피온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은 이미 피아노에서부터 유효하고 거대하게 거의 모든 장면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모든 긴장을 빨아들이는 홀리 헌터의 존재감은 경이로웠다. 파도로 시작해 심해로 끝나는 이야기 속에서 음악이 인간의 어떤 언어보다 탁월하다는 점을 마이클 니만(Michael Laurence Nyman)의 악보로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