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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어떻게 투사가 되는가, 잠

유재선 감독. 잠

by 백승권

젊은 남성이 세상천지 모르고 잠들어 있을 때 늙은 남성은 젊은 여성을 욕망한다. 늙은 남성의 추악한 욕망은 죽어서도 멈출 줄 모른다. 젊은 남성의 육체를 지배하고 젊은 여성의 세계를 살해하기 시작한다. 목숨처럼 아끼며 기르던 개를 죽이고 목숨 그 자체인 아기마저 없애려 든다. 수진(정유미)은 견딜 수 없다. 도망갈 곳도 없다. 가장 가까이 거주하는 남성들이 자신의 정신과 시간, 공간과 생명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눈에 핏발이 선다. 도저히 잠들 수 없다. 젊은 남성을 가두고 늙은 남성의 정체를 추궁하고 막아서지만 남성들의 처절한 무지와 무능력, 죽어서까지 달려드는 무참한 욕망은 무당(김금순)을 불러 등짝에 글씨를 써도 소용이 없다. 이대로 당하다 죽을 것인가. 수진은 기꺼이 투사가 된다.


엄마(이경진)와 연대하여 퇴마 의식을 치르고 부적으로 도배하여 집안을 봉쇄하며 날짜를 계산해 늙은 남성의 추악한 욕망에 저항한다. 가까이 사는 젊은 여자와 한번 잘해보겠다는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추악한 욕망을 분쇄시키려 안간힘을 쓴다. 사랑하는 존재가 이미 죽었고 다시 잃을 순 없었다. 아기만은 지켜야 했다. 자기가 죽어도 아기만은 절대 손댈 수 없었다. 남편은 신체가 털려 코골이나 할 줄 알지 시체에 가깝고 집과 아기를 지킬 수 있는 자는 오직 수진 자신 뿐이었다. 수진은 함정을 파거나 전략적인 접근으로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다. 그렇게 상대할 적이 아니었다. 억지로 약을 다량으로 먹이고 죽음을 죽음으로 되돌려주고 나무판을 던져 거울을 박살 내며 뒤통수를 내리쳐 기절시키고 전동드릴로 산 사람의 머리통을 뚫는다. 수진은 처음부터 미친 게 아니었다. 수진을 미치게 한 건 미친 늙은 남성과 무능한 젊은 남성 둘이었다.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진은 남편의 목이라도 따서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면 기꺼이 그랬을 것이다.


해만 끼치는 남편은 가두고 헛소리 하는 남성 의사는 때리고 죽어서도 정신 못 차리는 늙은 노인은 끝까지 응징하는 게 수진이 이 시대의 미친 남성들에게 맞서는 방식이었다. 자신은 못 자도 아기만 편히 자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을 몽땅 솥에 넣어 팔팔 끓여다 뼈만 남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건 단순히 모성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끝도 없이 죽이려 드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매뉴얼과도 같아 보인다. 남성 피해자 수가 여성 피해자 수와 동일해질 때, 여성이 다치고 죽은 만큼 남성도 동일한 규모로 그렇게 될 때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고 안정적일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세상 모든 여성들의 가방 속에는 공격용 전동 드릴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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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