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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허상의 괴물이 아니다, 언더워터

윌리엄 유뱅크 감독. 언더워터

by 백승권

이건 악몽이 아니며 너는 허상의 괴물이 아니다.





















수심 10Km의 심해는 어쩌면 꿈보다 더 도달하기 어려운 깊이. 눈을 뜨면 지상인 꿈과 달리 저곳은 눈을 떠도 차갑고 먹먹하며 자욱하고 숨을 옥죄는 어둠뿐이다. 높이 10km의 지상에 도달한 인류는 아무도 없다. 애초 그런 극단적인 곳은 지상에 없으므로. 하지만 바다는 다르다. 깊이 10km 그보다 더 깊이 석유회사는 지구의 골수를 빨아들이려 기지를 만들고 초대형 강철 빨대를 꽂는다. 자본의 관점에서는 개척이고 자연의 관점에서는 파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외부 자극에 맞춰 울리는 경고와 알람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한 전부다. (지구라는 행성을 핵심 수익원이 아닌 생명체로 인식하는) 고결한 윤리의식을 지녔다면 거기서 일할 수 없었겠지. 다들 각자의 이유로 그곳에 있었고 순식간에 무너진다. 확인 불가의 충격이 기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비상조치로 내벽을 닫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살이었다. 내벽이 닫히지 않길 바라며 멀리서 뛰어오던 동료들은 모두 수몰되었다. 선장은 망설일 수 없었다.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거나 어떻게든 이동해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지옥 아래를 걸어도 이것보다는 시야가 확보되었을 거 같은 상황, 느리고 육중해 보이는 잠수 슈트를 입고 남은 자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폭발하는 물살을 온몸으로 맞은 한 명이 산산조각 난다. 슬픔과 공포에 잠식될 겨를이 없다. 불안과 울음으로 집단 패닉에 빠져서도 안된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심해 속에서 살 길을 찾다가 공격의 실체를 감지한다. 심해어의 괴기스러운 외형에 익숙한 전문가조차 낯설기 그지없다. 괴생명체. 굉음과 함께 공간이 뒤흔들린다. 또 한 명의 몸이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난다. 또 한 명의 몸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은 인간의 개체수는 줄고 괴생명체의 규모는 가늠조차 안되며 방향은 보이지 않고 목적지는 위태롭다. 생존자들의 탈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 팀은 흩어진다. 그리고 거대한 (고질라 크기로 추정되는) 심해의 신의 형상과 마주한다. 그는 매우 화가 나 있었고 인간과 인공적인 모든 걸 부수고 찢고 있었다. 인간은 내동댕이쳐질 뿐이었다. 야 잠깐 난 그저 여기 직원이야. 화를 내려면 저기 육지 위 고층 빌딩 사무실에 있는 사장한테 가서 따져! 이런 항변이 통할리 없다.


쉘(Shell) 같은 석유 회사의 연봉은 모르지만, 언더워터에 나오는 심해 시추 시설의 근무 조건은 경이로울 정도다. 신체포기각서와 유서를 매일 써두어야 할 것 같은 음습한 불안과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생존 매뉴얼. 차라리 우주 기지에서 지구별을 지키는 지구방위수호대 같은 직업이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수심 10km의 심해와 시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은폐가 가능하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다. 자원 개발 과정에서 어떤 무리한 시도가 있었고 어떤 훼손이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어떤 사고가 발생했고 어떤 인명 피해가 있었으며 생존자들은 무엇을 겪고 보고 두려워했는지 모조리 차단할 수 있다. 수중에서 죽은 자들은 먼 훗날 다시 자원이 될까. 미래 인류는 그 자원으로 다시 집안의 온기를 돌게 하고 자동차를 움직이고 새 건물을 지을까. 깊은 바다, 깊은 굴, 깊은 숲,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원시 생명체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침투하는 인류와 대립하고 있을까. 언더워터는 그래비티의 압박감과 에어리언의 크리쳐를 심해로 옮겨 놓는다. 눈을 떠도 감아도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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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