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 거미집
걷잡을 수 없는 불길과 소스라치는 비명들, 거미집 영화 촬영장은 죽은 영웅이 남긴 것들을 뻔뻔하게 복제한다. 마치 복잡하게 펼쳐져 있고 끈끈해서 닿는 순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거미줄에 걸린 듯. 초대한 사람은 없다. 생계와 명성, 죄책감과 희망...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얽혀 먼 곳에서 차를 타고 내려 거대한 창고의 문을 열고 제 발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온 문 손잡이에 사슬이 얽히고 판자를 덧대 못이 박힌다. 아무도 나가지 못한다. 영화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영화는 공동의 목표이자 각자의 몫으로 조각을 나눈 피자와 같다. 모두가 자기 입만큼 먹고 눈을 부릅뜨고 볼에 경련을 일으키며 외우고 삼킨 대사를 내뱉고 온몸으로 열광을 뿜어낸다. 조연도 단역도 없다. 조연출, 촬영감독, 메이크업, 소품, 사무직원까지 모두가 자기가 서 있는 무대의 주인공이다. 역할은 있지만 의연히 자기 몫을 하기 바쁘다. 역할이 겹치고 이해와 해석이 꼬이면 불꽃이 일어난다.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의 영화는 찍을 수 없었던 시대. 공무원(장남열, 장광)이 갑자기 닥쳐 판을 엎을까 봐 모두 벌벌 떤다. 영화사 대표(장영남)부터 감독(송강호), 배우들까지 모두 나으리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술을 먹이고 시선을 돌린 후 정신을 잃으면 결박해서 가두기로 한다. 영화라는 공동의 판타지 앞에서 범죄는 한없이 사소한 소동에 불과하다. 상대하는 모든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배우(오정세)도 다음 일정이 다급해 히스테리컬 해진 여자배우(정수정)도 바뀐 대본을 납득할 수 없어도 가공할 연기력을 펼치는 중년배우(박정수)도 공무원 한마디에 사업이 망할까 전전긍긍하는 대표와 부장(김민재)도 천재가 되지 못해 한이 맺힌 감독도 개별적으로 보면 완성되어야 하는 영화 자체의 가공할 상징성과 비교하면 한없이 보잘것없다. 회상과 환상이 뒤섞이고 영화와 현실이 뒤섞이고 죄와 불안이 뒤섞여 칭칭 감긴다. 모두가 시체가 되어 천장에 매달린다. 홀로 남아 텅 빈 촬영장을 보며 상념에 사로잡힌다. 대사와 눈빛, 몸짓을 주고받으며 대화와 소통, 갈등을 묘사하지만 다들 자기 몫에 충실할 뿐이다. 부분이 모인 합이 전체보다 커 보일 뿐이다. 실체는 관점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실체가 아니다. 환상은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상이 아니다. 회상엔 죄가 묻어 있고 지금까지 그 죄가 따라다니며 벗어날 수 없다. 욕망 자체는 죄가 아닐 수 있지만 욕망이 실행되어 타인의 죽음을 이용하여 개인의 영리만을 추구할 때 예술가는 범죄자가 된다. 자신의 죄를 고해성사하며 카메라 앞에 늘어놓는다. 시사회에서는 아무도 떠들지 않는다. 자신만 아는 의미의 미소만 지은 채 나란히 앉아 정면을 응시할 뿐. 배우의 자아는 몇 개인가. 현실에서 외도를 저지르는 배우가 영화 속에서 외도를 저지르는 연기를 할 때 그의 자아는 어느 쪽인가. 그가 걱정하는 여자는 현실의 여배우인가 영화 속 여주인공인가. 남주인공이 칼에 찔리는 연기를 할 때 실제 자신도 그런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운가. 여주인공이 누군가의 남편을 빼앗는 연기를 할 때 현실에서 누군가 자신의 배역을 빼앗을까 봐 두려운가. 감독은 더하다. 감독은 웃지 못한다. 죽은 감독처럼 되고 싶었던 감독은 죽더라도 죽은 감독처럼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감독은 전설이 되었고 자신은 당장 죽더라도 그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 역시 죽은 감독의 숨겨진 미발표 작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훔친 재능으로 연명했고 세월이 흐른 들 실력은 까마득했다. 죽은 자의 명성과 아우라가 산 자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김감독은 새로운 최초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웃을 수 없었다. 배우들을 아무리 새로운 대본이라는 거미줄에 칭칭 감아도 한 장면을 완성 위해 광기에 사로잡혀 목숨을 던진 자를 능가할 수 없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거꾸로 매달려 죽은 자들처럼 굳어 있을 뿐. 김감독은 신감독(정우성)이라는 거미줄에 사로잡혀 모든 순간에 걸쳐 쪼그라들고 있었다. 첫 단추를 도적질로 채운 이상 갈채를 받는다 한들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안면의 죄책감에 달라붙은 거대한 거미를 절대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