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 쿠퍼 감독.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무대 중앙으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의 밝기만큼 주변은 컴컴하다. 음악계의 거장 레니(레너드 번스타인, 브래들리 쿠퍼)를 둘러싼 명성과 쏟아지는 찬사만큼 아내 펠리시아(캐리 멀리건)의 표정은 반대였다. 레니가 사랑한 건 음악과 아내와 아이들 뿐이 아니었으니까. 레니가 당장이라도 승천할 듯한 황홀한 표정을 지을 때는 딱 두 가지 경우였다. 지휘에 한없이 몰입할 때와 바로 옆에 잘 생기고 어린 남성이 있을 때. 단숨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며 부담을 안고 아이를 셋까지 낳은 펠리시아가 이를 모를 수 없었다. 레니는 파티장에서 어느 남성과 키스하는 모습이 펠리시아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레니는 주말에 가족끼리 어울리는 장소에 그 남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남편의 불륜남이 펠리시아와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어울리고 있었다. 이건 이성애자 아내가 남편의 성적 취향을 혐오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성애자 여성과 결혼을 선택하고 평생의 사랑을 언약한 남자가 예술가라는 이름 아래 자기 맘대로 한 가정과 한 여성의 인생을 파괴하는 이야기다.
레니는 아내 펠리시아와 점점 줄어가는 대화와 깊어지는 갈등의 원인을 펠리시아의 우울증으로 돌리곤 했다.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비겁하고 야비한 회피였다. 아이들도 커가면서 점점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떠도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아빠가 가족 모임에 자주 초대했던 젊은 남성이 친한 후배가 아닌 불륜 대상이라는 것도. 경악할 일이었다. 아빠 레너드 번스타인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이었으니까. 레니는 딸에게 처음부터 동성애로 엄마를 배신하고 가정을 흔들리게 했다는 점을 부정하고 누군가 질투 끝에 퍼뜨린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세계가 붕괴하고 있었다. 레니는 그 진원이자 중심이자 파괴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변호했다. 예술가라는 허울 뒤에 숨어. 펠리시아는 이런 자신의 삶을 똥 싸는 새 밑에서 지내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도저히 멈추지 않는 악취와 오물 속에서 펠리시아는 실제로 병들고 죽어가고 있었다
만인의 갈채 속에서 나누는 키스만큼 쉬운 건 없었다. 어느덧 펠리시아와 레니 둘 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펠리시아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레니의 시선과 스킨십은 여전히 어리고 젊은 남성들을 향해 있었다. 펠리시아는 암으로 유방을 절제하고 폐가 손상되어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근육이 시들고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레니는 많은 일정을 미루고 곁을 지켰지만 결정적 원인이 자신이라는 자학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 예술가의 자유로운 삶이란 얼마나 평화로운가. 심지어 펠리시아가 숨을 거두고 거대한 빈자리를 남겼어도 레니가 위로를 바라는 대상은 젊은 남성이었다. 거장 예술가에게 아내는 아이들은 가족은 신분 위장을 위한 의복 같은 것이었을까. 세상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아내를 잘 모를 것이다. 영화 마에스트로는 그늘에 숨은 이야기의 멱살을 잡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시대가 칭송하는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이 창조한 선율이 누군가의 시간과 영혼을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르며 평생을 똥물에 뒤덮인 시체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동성애가 끼친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 외에 모든 것을 외면하고 배신한 어느 예술가의 치졸함에 대한 고발이다.
*본 글의 제목은 해당 영화 대사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