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라스트 미션
영감은 너무 즐겼는지도 몰라.
너무 지나치게. 그래서
우리 밑에서 일하게 된 거지.
얼(클린트 이스트우드)은 복잡한 인간이다. 한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한없이 입체적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꽃사업이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완전히 외면했다. 수많은 꽃들을 닳도록 바라보며 아름답게 키웠지만 아내, 딸 등 얼을 기다린 가장 가까운 이들을 쓰레기장의 잡초보다도 못하게 대했다. 평생 동안. 젊은 이성과 유흥을 즐기고 인종 차별 발언을 숨 쉬듯이 내뱉기도 했다. 얼은 말 그대로 끔찍한 버전의 옛날 사람, 고집 센 노인네였다. 인터넷과 휴대폰을 우습게 보다가 평생 키운 사업을 접어야 했고 본능적으로 다음 돈벌이를 찾아야 했다. 가족들 중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구성원은 없었지만 먹고살고 교육을 마치려면 돈이 필요했다. 이런 얼의 상황에서 결핍을 눈치챈 자가 접근한다. 범죄를 제안한다.
뭔가를 트럭으로 배달만 해달라고. 대가는 짭짤할 거라고. 얼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수백 킬로그램의 마약 운송책이 된다. 한 지역의 마약단속국의 한해 압수량이 불과 몇 킬로그램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마약인지 알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약이든 사약이든 얼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번 돈으로 트럭을 바꾸고 동네 가게를 되살리고 손녀 학비를 대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기쁨이었다. 범죄조직원의 겁박이나 총구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집 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실패자가 되는 일이었다. 얼은 특유의 유머감각과 무심한 듯 따스한 태도로 같이 범죄에 가담하는 모두에게 호감을 얻는다.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관점을 조금만 비틀었다면 얼은 그 동네 마약사업을 거머쥘 수도 있을만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얼은 마약 범죄 시스템의 흔한 대체제였다. 한 번이라도 배달이 꼬이면 단숨에 살해당할 수 있었다. 얼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말을 듣지 않는다. 평생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마약 조직원들의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에겐 패턴이란 게 없었고 그래서 추적이 힘들었다. 얼은 쉽게 잡힐 수 없는 최고의 마약운반책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었다. 그는 평생 돈 버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한 수많은 가장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얼은 그 만인에게 학습된 이미지에 숨어 자신이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고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체포되고 나서도 힘없는 노인네가 젊은 놈 말에 속아 범죄 사업의 일부가 된 거라고 핑계 댈 수도 있었다. 아내를 먼저 여의고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불쌍한 신세라고 선처를 호소할 수도 있었다. 변호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얼은 면죄를 거부한다. 마약 범죄 관점에서 그가 운반한 마약량은 그냥 넘어갈 수준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하부조직원 레벨에 불과했지만 그의 역할은 명확하고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생을 속죄 속에서 고요히 갇혀 지내는 것이 그에게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였다.
냉정하게 보면 얼의 모든 선택은 자신을 위한 거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족을 외면한 시간은 과거의 관점으론 희생의 상징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버림받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렇다고 참전후유증을 겪으며 평생 괴로움에 빠지는 것도 근사한 옵션은 될 수 없으니까. 얼은 그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성공을 추구하며 이외의 모든 것을 외면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가족의 사랑은 마지막 욕심이었다. 핏줄이라는 불가항력을 악용한 회복을 향한 무리한 시도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은 가족들은 이토록 돌아오려는 늙은이를 막을 수 없었다. 핏대를 세우고 악지르며 싸우기엔 자식도 부모도 병들고 아프고 너무 지치고 지긋지긋했다. 수긍과 용서 외에 더 쉬운 길은 없어 보였다. 얼은 금세 사라지는 찰나의 존재에 생애 전부를 건 사람이었다. 꽃이 사라지듯 가족의 생명도 사랑할 시간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깨달음은 항상 늦었다. 얼은 운이 좋아 아내가 죽기 전 기회가 있었다. 이건 영화니까 가능하지 현실 세계 사람들에겐 기회가 없다. 시든 꽃처럼 소멸된 관계 속에서 혼자 낙담할 뿐이다. 꽃은 내년에 다시 필 수 있겠지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노인네들이 얼처럼 가족에게 버림받고 마약 범죄를 저지르다가 스스로 용서하는 해피엔딩에 다다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