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line Novak: Get on Your Knees
여성 스피커들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한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것들은 대부분 봤다. (마치 공교육기관 숙제 제출용으로 들어갈 만한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애초 관심 있는 소재를 많이 다루고 표현이 풍부해 공부하는 느낌으로 보는 편이다. 여기서 관심 있는 소재란 남녀 짝짓기 행태에 대한 선정적인 묘사가 아니다. 넷플릭스 같은 초대형 플랫폼에서 (스스로의 탁월한 능력을 통해) 발언권을 쟁취한 여성(문화적 사회적 소수자) 입장에서 느끼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압박과 대응이다. 여성 차별 문화와 역사에 대해 날카로운 발언을 할 수는 있지만 여기에 위트와 유머를 녹여 공감대를 이루고 설득력 강한 펀치라인을 날리는 건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권위적 능력이다. 이 지위까지 오르기 위해 그들이 어떤 시련과 고난을 거쳤을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1시간 또는 그 이상 이르는 시간 동안 대본을 통째로 씹어 삼키고 애드리브를 녹여 청중을 열광시킨다. 역시 중요한 건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다. 스탠딩 코미디는 코미디가 아니다. 이들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선동이자 도발이며 더 많은 이들이 귀 기울여야 할 지금 이 순간의 가장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다. 이번에 본 재클린 노박의 무대는 메시지를 뛰어넘는다. 표현 방식이 메시지 자체처럼 들렸다. 소재를 넘어 민감한 소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차원에서 가장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건 마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장황하게 적은 일기를 시어로 구성한 1인극의 독백으로 옮긴 느낌이다. 이 독백은 무려 1시간 34분 동안 끊기지 않는다. 재클린은 계속 발레 하듯 가볍고 세부적으로 움직이고 계속 마이크를 놓지 않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계속 무언가를 흉내 내거나 표정 연기를 하고 동시에 계속 청중과 자신의 위치를 체크하고 동시에 계속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를 메시지를 증명하려 보이지 않는 세계와 사투를 벌인다.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존재하는 세계, 보이지 않지만 끝없이 압박하며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억누르고 짓누르고 숨통을 조이는 세계, 보일 때는 극악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세계, 보일 때는 모두와 다른 한 사람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계, 독창성을 존중하지 않는 세계, '이빨'을 드러내는 일을 혐오하는 세계, 재클린은 처음에 문을 연 메시지로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자신의 1인극 퍼포먼스를 완성한다. 정말 1초의 틈도 없이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조명과 시선을 총동원한다. 1시간 넘는 동안 에미넴이 앨범 하나를 통째로 옮기는 랩을 리믹스로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재클린은 쉬지 않는다. 한번 잡아당긴 청중의 눈과 귀를 절대 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정 순간의 묘사를 고자극의 욕설이 아닌 문학적인 형태로 변환하며 개인의 사연을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처럼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절박한 사연과 뭉클한 감성, 미친 유머와 천재적인 위트, 적확하게 꽂히는 메시지가 탁월한 리듬감으로 배합된 스탠드업 코미디는 있었다.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재클린 노박의 이번 무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건 그저 더 낫다 별로다의 서열 매기기가 아니다. 재클린 노박은 형식(새로운 표현 방식)이 소재(표피적 자극성)를 뛰어넘었을 때 어떤 충격과 울림을 주는지 화려하고 집요하게 전시한다. 행위예술을 선보인다. 그가 이번 편에 다루는 소재 자체는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새롭지 않다. 늘 공연 초반에 청중의 주의를 모으고 분위기를 덥히기 위해 자주 등장하고 자극적으로 활용되는 소재였다. 재클린은 전혀 다른 언어적 접근과 수사를 사용하며 장르를 바꿔놓는 기행을 펼친다. 기꺼이 자신이 전체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의 '이빨'로 드러나길 기획하고 실행한다. 새로운 형태의 롱테이크로 읽히기도 한다. 슈퍼 스타다운 능숙함으로 휘어잡는 무대는 있었지만 이처럼 새로운 시도는 처음이었다. 이런 새로운 방식이 진화하고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녹여져 차기 무대에 발화된다면, 재클린 노박이라는 이 '독창적인' 스피커는 다시 넷플릭스에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