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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문제가 아니다, 선산

민홍남 감독.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

by 백승권

산이 바다였을 적에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산이 비로소 산이 되었을 때조차 인간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보면 인간과 개가 같은 크기의 점으로 보이는 곳, 땅에 농사짓고 먹고사는 동네에서도 산은 모든 시멘트 외길과 아이 울음소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다가 산을 산이라고 처음 부르기로 할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세상 만물의 계보를 따지자면 산과 인간은 신과 인간의 간극과도 같았다. 인간은 산을 인지할 때부터 섬기고 절하고 두려워하고 별짓을 다하며 온몸과 정신을 조아렸지만 산에게 인간은 그 어떤 존재감도 아니었을 것이다. 산에게 인격을 부여한건 인간이었다. 하나의 연결점이라도 상상할 여지를 줘야 숨통이 트일 테니까. 그래야 산의 이름을 부르고 산을 향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산을 대상화하고 산을 영역으로 간주하고 산을 사이에 두고 집단끼리 다툴 수 있으니까. 산을 섬김에서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보려 할 때 산을 자산으로 바꾸려 할 때 산을 도구화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드높일 수 있을 테니까.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인간들은 산에 의미를 부여하며 서로를 쳐 죽이고 있었다. 산은 소리 낸 적 없었고 늘 시끄러운 건 인간들이었다. 인간이 문제였다. 산이 아니라.


발정 난 개새끼에게 배신당하고 직장 계급 다툼에서 가차 없이 밀려난 인간이 선산이라는 불로소득을 향해 핏발 선 눈으로 달려든 건 수순이었다. 길 잃은 삶에서 싱크홀에 빠져 하염없이 추락하던 윤서하(김현주)는 집중할 대상이 필요했다. 집중하고 물어뜯고 부수고 싶었다. 연락 끊긴 친척이 남긴 선산은 마침 삼키게 된 슈퍼마리오의 버섯이었다. 몸집을 키울 수 있었고 무적이 되어 눈앞의 무엇이든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윤서하는 맹목적인 소유욕으로 달아오른다. 반드시 가져야 만 했다. 완전히 털린 삶, 굴러온 선산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막대한 자산을 원한 게 아니었다. 윤서하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이 필요했다. 그때 시체와 함께 등장한 게 선산이었다. 윤서하의 삶은 그때부터 산으로 가고 있었다.


선산 상속 후보자로 포지셔닝 되자 윤서하는 기력을 되찾았다. 독기 서린 생기였다. 온갖 권모술수에 휘말리다가 깽판을 치는 일도 두렵지 않았다. 평생 쳐다본 적도 없던 삶을 독점하고 싶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직 자신이어야 했다. 주변의 시체가 늘어날수록 윤서하의 탐욕은 팽만해지고 있었다. 누님이라고 부르던 자들 중 하나는 총 맞아 죽었고 하나는 웬 좀비 같은 썩은 안광의 소유자였다. 윤서하는 범죄를 사주한다. 경쟁자를 없애달라고. 하나의 범죄자가 죽으면 다음 범죄자에게 자신을 유리한 위치로 밀어달라고 계략을 꾸민다. 어릴 적부터 꼬인 인생 더 꼬일 일도 없을 거라 여겼다. 무조건 조상 탓만 하면 면죄부일 터였다. 다 죽이고 자신만 살고 싶었다. 선산이든 먼산이든 손아귀에 쥐자마자 팔아치우고 어떻게든 지금보다 낫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이고... 선산 남긴 조상 세대가 제대로 엉켜있었다. 배다른 동생이라고 해야 할지 고종사촌이라고 해야 할지 전임 교수까지 노리던 나름 지식인 계층이었는데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너무 멀리까지 와버려서 정신을 차렸을 땐 불가마 속이었다. 살아야 했다. 같이 살아남는 일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선산 쟁취 RPG에 이토록 난감한 퀘스트가 많을 줄이야. 도움 되는 NPC는 하나도 없고 죄다 산채로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선무당들 뿐이었다. 가족이란 가족은 죄다 모아 선산에 묻어 팔아버리고 노래방 딸린 변두리 건물 하나 품고 살고 싶었을 것이다. 징글징글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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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