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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는 세뇌하고 노동자는 튀겨진다

샘 펠 감독. 치킨 런: 너겟의 탄생

by 백승권

어릴 적 동네 사람들 중 일부는 '찬송가(또는 설교)를 듣고 자란 방울토마토(미니토마토)가 (은혜 받아?) 맛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비닐하우스에는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찬송가는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자라고 수확된 방울토마토의 정확한 당도나 수확량의 증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동네 교인들의 분포는 적지 않았고 방울토마토에 찬송가를 들려주는 농가 또한 한동안은 줄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키운 방울토마토를 팔아 자녀의 학비를 대고 장을 보고 다음 해 농사에 쓸 씨앗을 샀다. SNS를 돌고 도는 밈 콘텐츠 중에는 좋은 말을 듣고 자란 식물이 뿌리와 줄기가 더 잘 자라더라는 내용이 있다. 치킨 런: 너겟의 탄생을 보고 떠올랐다.


행복이 세뇌된 닭들이 줄을 맞춰 척척척 걸어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생산 라인을 타고 붉은 열기로 가득한 초대형 튀김기로 걸어 들어간다. 그들의 눈은 초점이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입은 웃고 있다. 잠시 후 종이 바구니에 따끈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후라이드 치킨이 담겨 나온다. 행복해 보이던 닭들은 치킨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만든 회사가 지은 집 근처 매장에 돈을 내고 치킨을 주문할 것이다. 행복한 닭이 만든 맛있는 치킨이라. 스트레스 덜 받은 닭이 낳았다는 달걀을 조금 더 비싸게 파는 마트 신선 코너가 떠오른다. 소비하는 인간 관점에서는 세심해서 고맙긴 하지만 닭의 관점이라면 많이 다르다. 이토록 디테일하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도로 보면 너무 극단적인가. 자본가들이 일정 공간 안에 가두고 세뇌시킨 노동자들이 자기 발로 불길로 들어가며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다른 노동자들이 연쇄적으로 소비한다. 일부 진실을 마주한 자들이 눈을 뜨고 다른 노동자들의 추가 희생을 막으려 불길 앞에서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 이미 길들여진 노동자들의 수는 너무 많아서 뭉쳐서 다가오면 소수로 물리적인 제어가 불가능한다.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충성스러운 지식인이 만든 시스템을 멈추는 버튼을 당장에 누르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계속 튀겨지고 치킨은 계속 생산되고 자본가는 계속 돈을 벌고 노동자는 그 치킨을 주문해서 가족들과 나눠 먹을 것이다.


이런 풍경을 어쩔 수 없다고 인식하고 그저 받아들이고 불길로 자연스럽게 뛰어드는가 하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서 점진적인 개선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스템을 멈추는 버튼은 하나가 아니라고. 모든 노동자와 자본가가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더 많은 사람이 누르면 불구덩이로 노동자들이 튀겨지는 시스템은 유지되고 더 많은 사람이 누르지 않으면 시스템은 멈추고 새로운 가능성 안에서 노동자들의 무방비적인 희생을 줄일 대안을 간구할 거라고. 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선거와 투표로 대표되는 시나리오다. 내부적으로 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겠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다루는 여기서 꺼내기엔 길이 멀고 좁다.


표면적으로 자발적인 참여로 보이지만 세뇌와 착취로 이뤄진 노동자 집약형 생산 시스템은 그 자체로 비판과 비평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을 대다수가 소비하고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한쪽만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쉽지 않다. 불구덩이로 뛰어들기 전에 운이 좋게 살아남은 노동자도 늦은 시간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누군가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생산한 결과물을 한쪽 손에 들고 갈지도 모른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과 육질을 느끼며 겨우 다다른 하루치 삶의 소박한 성취에 감사할지도 모른다. 내일을 위한 희망과 에너지를 다시 기대하며.


나는 주렁주렁 토마토나 육질 좋은 닭은 아니지만 시스템 상위 그룹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좋은 메시지를 들으며 세뇌되어 경제 순환 시스템 하위 구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적극적 긍정성과 다급한 실행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통하는 디지털 메시지 용광로 속에서는 환상과 망각, 진실과 현재의 지점과 방향을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다. 그때그때 관점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고 비전이 바뀌고 해석이 바뀌며 인식이 바뀐다. 치킨 런: 너겟의 탄생에는 자본가가 튀김기에 거꾸로 처박히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영화 파고의 분쇄기 그 장면처럼. 자본가의 생사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다. 어차피 양계장과 치킨 공장은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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