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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아닌 증상

by 백승권

어떤 감정엔 이름이 없다. 차라리 증상에 가까울지 모른다. 두 문장을 쓰고 사전을 뒤진다. 감정과 증상이 얼마나 다른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증상의 사전적 첫 번째 정의는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 감정과 증상을 구분 짓고 싶었던 처음의 의도와 같다. 물론 병을 앓을 때도 일정한 감정이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이야기는 다른 맥락이다. 지금은 병에 가까운 상태에 가깝다. 긍정적인 통제가 어렵다. 감정이 외형적이고 가시적이라면 지금의 증상은 낮고 깊이 자리 잡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밀착되어 있다. 한동안 관찰했다. 자아의 일부에 가깝다. 그동안 자각할 수 없었던 자아의 일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싶지만 이 정도 표현이 아직까지는 최선이다. 완전히 없던 게 생성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발견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곤충에 대해 설명할 때 쓰는 말이었는데, 여전히 스스로를 바라보다가 새로운 지점을 가리키게 된다. 세계 지도에서 낯선 지명을 발견하듯, 천체를 뒤덮는 수많은 행성 사이에서 낯선 별의 이름을 지어주듯. 태도는 반작용이다. 작용에 대한 반응. 새로운 태도로 표현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상황과 마주했다는 반증. 난이도의 문제는 아니다. 후회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견딜만한 상황도 견디기 힘든 상황도 모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격렬한 소모감을 절감한 적이 많아다. 지금은 결이 다르다. 한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발악에 가까운 시도를 연쇄적으로 한 적이 있다. 스스로 느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타인이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지점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시야의 너비와 깊이, 디테일 운영 능력이 확장되었다. 다양하고 새로운 상황 속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과정과 과정 속에서 일상의 총량이 증폭되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자아가 트레이닝을 거치고 있었다. 지금은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컨트롤 타워처럼 굴고 있다. 자주 즉흥적이고 쉽게 안도하지 않으며 갑자기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고 낯선 시도를 실험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움과 그렇지 않은 관점과 노력 사이를 수없이 오간다. 요동치는 내부에 아랑곳없이 외부 상황은 매번 벽지와 가면을 갈아 끼우며 새로운 시험장에 밀어 넣는다. 내가 변한 건 없다. 하지만 극심하게 적응하고 있는 것은 맞다. 무엇보다도 도무지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막막하다. 어떤 감정엔 이름이 없다. 차라리 증상에 가까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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