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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by 백승권

생각만 많아지는 계절이었다면 이렇게 길지 않았겠지. 가끔은 계절이 아니라 7년의 암흑 같아. 눈을 뜨고 있어도 모든 곳에 부딪히며 멍이 든다. 아무도 말을 걸고 있지 않는데도 모두 제발 닥쳤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해. 이렇게 높은 곳에 앉아 있는데도 숨만 쉬어도 머리가 울리는 지하실 같기도 하고. 눈에 닿는 모든 사물을 경멸하고 발이 닿는 모든 바닥을 깨뜨리고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이 졸릴 것 같아. 아무것도 살아있지 않아서 마지막 남은 나를 죽이고 있는 것 같아. 수십 개의 겨울에서 살아남긴 한 걸까. 죽은 자의 기억에 갇혀 그림자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매번 힘겨울까. 어떻게 모두가 이렇게 건전지를 갈아 끼울 시기가 된 마네킹처럼 보일까. 헉헉 숨을 고르는 데만 온종일 걸리는데도 가장 가까운 곳에 더 힘겨운 자가 자신의 눈물에 빠져 익사하는 광경을 매일 보고 있을까. 매시간 누군가 죽고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놓치는 것도 많은데. 시체 위에 눈이 쌓이고 흐르는 눈물은 금세 얼고 흘린 피는 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연약하고 착한 사람들은 더 낮고 어두운 곳으로 도망치고. 남은 자들은 가스실을 청소하듯 자신의 자리를 치우고 있다. 누군가는 행복해야 할 텐데. 억지웃음을 지으려다 입가가 찢어지며 우는 소리들이 우웅거리며 천장과 유리문을 두드린다.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들도 있어. 그들은 새로 산 가면을 자랑하듯 자욱한 연기 사이에서 무표정을 잃지 않고 있지. 가면이 아니었던 거야. 가면이 피부가 되어서 그걸 벗으면 살점과 같이 떨어져 나가며 원래 얼굴을 잃은 투페이스가 돼. 동전을 던지며 다른 이의 얼굴가죽도 벗기려 들겠지. 그걸 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게 유일한 생존법이라 믿으며. 몇 줄의 메모 하나로 천냥 빚을 갚으려는 이들도 있지. 천냥 빚이 어떻게 그렇게 상환이 되겠어. 천냥을 천냥으로 갚지 않으면 빚은 남은 거고 편지는 그저 잉크 묻은 종이일 뿐이야. 생각만 많아지는 계절이었다면 이렇게 길지 않았겠지. 가끔은 계절이 아니라 7년의 암흑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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