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얼마나 크게 웃었으면

by 백승권

혼자 웃어요

기가 막혀서

혼자 걷다가


바람이 불고

뺨의 온기가 내려가고

손등이 조금 서늘해지다

살랑이는 나뭇가지를 지나다

가로등 조명 쏟아지고

그림자 흔들리다

엔진소리 멀어지고

39초 남은 녹색불 깜빡이고

작은 자전거 오가고


또 뭐가 있지.

그때 했던 말

그때 짓던 표정

그때 나누던 뭐뭐

그때 마시던

그때 흘리던

그때 닦고

그때 걷고

그때 서서

그때

그때

그때가 너무 많아서

그때가 혼자 걷다 떠오르고

그때가 되면 그때보다 작게 웃고

그때와 지금은 다르구나 되뇌어.


앞으로도 혼자 걸을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혼자 웃을 테고

그렇다면 그때는 지나간 게 맞을까

그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면

그때는 혼자 걷지 않았고

그때와 달리 지금은 혼자 걷다가 웃는데

그때 얼마나 크게 웃었으면

지금도 자국이 남아 이렇게 쉽게 웃어질까

이러다 혼자 걸을 때만

웃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그때 지나고 지금 남은 게

혼자 웃는 일뿐이라면

혼자 할 수 있는 게

그때 떠올리며 웃는 것뿐이라면

그때를 복습하는 게

혼자의 유일한 의무라면


이게 그렇게 사무친다면

그때를 두고 오지 말았어야지

그런데 그때도 알았어

지금이 오면 이렇게 될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혼자 이렇게 남아

나는 혼자 웃게 될 거라고

알고 있었고 지금은 그 예상의

실현일 뿐이야.


안다고 해도 아무것도 못했어.

토니 스타크가 자기 죽을 거 알고도

그렇게 최선을 다해 죽었던 것처럼.

자기의 시작과 끝을 같은 이름으로

묶어 완결했던 것처럼.

그렇게 죽음을 막지 못하고

모두의 운명을 바꾸며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던 것처럼.


혼자 남지 않을 확률이 없었지.

있더라도 가능성이 아닌 안타까움의 수치.

나는 혼자 남아 웃고

너는 대체 어디 있는지


이럴 줄 알았어요.

알면서도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아요.


혼자 걸을 때


늘 같은 촉감의 바람이

계속 불었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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