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VS 즉사

by 백승권

끝을 원하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때만큼

괴로울 때가 없죠.


충분히 기록한 것 같지만

여전히 고통이 멈추지 않을 때

새로운 통증이 비집고 돌출할 때

유일한 탈출이 정녕 죽음뿐인가 싶기도 하고.


매일 말해도 소용없고

다시 아침이면 같은 지옥으로 걸어가고

서로 위로해도 눈물은 닦이지 않고

먼저 탈출한 친구만 자꾸 생각나고

이게 사는 거라면 그만 살고 싶고

허나 이대로 끝내기엔 겁이 많고

죽을 용기까지는 내고 싶지 않으니까


꺼져가는 땅 속으로 오늘도 빨려 들어가며

살려달라고 벌리는 입 속으로 시멘트가 들어갑니다.


좋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고

선택했던 일을 잘 해내고 싶었고

힘겨웠던 순간도 이겨내려 애썼고

버티려고 안간힘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 알게 되었죠.

무너졌구나.

내가 아닌 나의 세계가 먼저

인식이 아닌 나의 현실이 먼저

실망을 넘어 어떤 기대도 소용없는

지금은 모든 호흡기를 떼고

깊은 강물로 잠기는 기분


실제가 아닌 걸 알지만 숨이 막히고

숨을 쉬면서도 근육이 굳어가고

아무도 가둔 적 없지만 사방이 철창이고

소리 없는 비명이 고막을 찢고

끝도 없는 울렁거림이 뼈를 부수고

낫지 않는 어지럼증이 폐를 찌르며

살아있어도 이건 살고 싶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모조리 부정당하며

누군가 내가 그동안 그려온 점선면을

공들여 지운 느낌.


도망? 가면 되잖아?

죽음? 살면 되잖아?

고통? 피하면 되잖아?

너와 다른 내 삶은

퀴즈쇼가 아니라서

불규칙한 박동이

저렇게는 잘 진정되지 않아.


틀려도 된다는 말은 편안하지.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거라서

들을 때만 잠시 웃고 기록하지 않는다.

살아요.

최후의 장소로 거긴 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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