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안에
제주에서 찍은
8160장의 사진이 있어
하늘과 바람
구름과 나무
길과 비
볕과 밤
물과 별
우린
그 사이를 누비며
헤엄치고 달리고
수제버거를 먹고
넷플릭스를 보고
치킨을 주문하고
모닝 샌드위치를 만들어
몇 해 전 여름
어둡고 축축한 한낮
차는 길을 잃고
수장될 뻔한 이후
제주 모든 길이
살아있다는 믿음이 돋아났어
우리가 앞으로 가는 게 아닌
제주 모든 길이 우릴
당기는 기운을 매번 느껴
넘실거리는 바람에 섞여
휘몰아치는 구름을 헤치고
벅차오르는 파도를 피하고
감미로운 모래알을 만지며
제주가 흐느끼는
재즈의 선율에 맞춰
빨간 구두를 벗지 못하는 소녀처럼
정처 없이 춤을 추어야 했단다
정신을 조금 더 놓았다면
육지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세이렌의 노래처럼
제주의 바람과 나무는
방심한 자에게서 다음 날을
빼앗거든
내년에도 날고 있을 거야
제주에서 우릴 기다리는
착하고 서늘한 유령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