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길 때까지 좋아할 거예요
나 혼자 이렇게 오랫동안
모든 순간의 끝까지 끈질기게 좋아했어도
끝내 가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었던 나를
불쌍히 여길 때까지
난 가능해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이미 그러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어요
당신께 절실히 호소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연히라도 누군가 눈치채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말 이제는 제가 가여워서 그래요
저는 제가 너무 불쌍해요.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내가
도와줄 사람이 나 밖에 없고
들어줄 사람이 나 밖에 없고
멈추게 할 사람이 나 밖에 없는 내가
이토록 너무 초라해서 미칠 것 같고
한없이 부끄럽고 누추하고 당장이라도
나를 누군가 끝내버렸으면 해서
그게 나밖에 없어서 처음부터 그랬어서
당신이 아닌 내게, 내게 호소하는 거예요
불쌍한 너를 내가 끝내주겠다고
이토록 입을 틀어막고 울부짖는 너를
놔둘 수 없다고 말리고 싶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그만 멈추려 합니다
내가 멈춰도 아무것도 멈출 리 없는 거 잘 알아요
그저 나만 멈춰도 모든 것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인다는 거
그걸 오래전에 아니 처음부터 알았어요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도 내가 더
가까이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이 자리에 없어도
세상 어느 것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게 확신에 이르러서 저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더 먼 곳을 바라보기로 합니다
희망은 거기로 간 것 같아서
먼저 도착하면 내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길 것 같아서
현실을 딛고 제대로 서 있지 못했던 나를
더 다가오지 못할 정도로 망설이고
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했던 나를
그러니 마음껏 이제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길 정도로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이 한때 있었다는 걸
영원이란 개념이 허구와 망상에 불과하더라도
영원을 흉내내기 위해 앞으로도 내내
영원을 실패하고 실험하며 좋아할 거라는 걸
잠시라도 알아주세요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일찍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만나고 헤어져도 처음 만난 기억으로
다시 만나고 다시 같이 있고 싶어서
덕분에 행복할 수 있어서
그만큼 불행할 수 있었고
전 이만 살아갈 테니까
당신은 나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