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여자의 시체를 업고 다니던 남자

by 백승권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읽다가

이현세 작가의 남벌이 떠올랐어요


사랑했던 여자의 시체를 업고 다니던 남자

사랑했던 여자가 적의 공격으로 죽은 후

남자는 여자를 업고 다닙니다

시체가 부패해 파리와 벌레가 꼬이고

해골이 점점 드러나고...

같이 다니던 아군들이 거리를 두지만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리고 또다시 적의 공격이 쏟아지고

남자는 여자처럼 총격을 받고 물속으로 가라앉아요

등에 업은 여자의 시체와 함께

그제야 남자는 여자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남자의 표정이 조금 웃고 있었거나

평온했었던 기억은 남아있어요


이 남자는 아주 작은 비중의 조연이었어요

하지만 그에 대한 이 에피소드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도 다시 읽었을 때도

이 남자의 선택과 결정과 행동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했어요.

일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죽었던 여자는 살아있었을 때

남자와 격렬한 사랑에 빠진 연인도 아니었어요


겉으로 드러내며 표현하지 않았고

남자의 진심은 여자가 죽은 후에야

저런 식으로 알 수 있었어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며

자신을 확인해요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결정합니다


그 남자는 행복했을 거예요

죽어서라도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자신이 그 죽음을 안고 끝까지

같이 떠날 수 있어서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끝은 그럴 수 있어서


구의 증명을 다 읽지 않았지만

남벌의 몇 장면이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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