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없으면서도
어떤 행위에 집착하게 될 때
그게 뭔가에 대한 기록일 때
확신과 결단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감행되는
과거의 검증을 전제로 한 안전한 결과물이 아닌
시간을 이렇게 썼다는 표현일 때
표현일 뿐일 때
표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탄산음료 같을 때
심지어 탄산조차 없는 따스한 탄산음료 같을 때
뱉고 싶지만 이미 넘기고 있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일 때
그런 걸 쓰고 있고 공개했다는 이유로
누군가 읽어야 할 때
기록은 취향의 영역을 넘어
타인을 향한 폭력이 될 텐데
그걸 이제야 벼락 맞은 듯
깨달은 것도 아니면서
뻔뻔한 낯과 부러지지 않은 손가락으로
잘도 그러고 있고
채무의식은 없지만
양심이라는 것도 조금은 있을 텐데
표현의 자유란 얼마나 위험한 도구인지
한때는 애정결핍의 반작용이라 여긴 적도 있었는데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땐 그나마 제정신이었을 텐데
쓸모를 놓아버리고 나니 텅 빈
비닐봉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줄 몰라
제멋대로 소음과 속도 사이를 나부끼며
시야를 어지럽혀
무관심과 무의식이 무모함과
각자 가던 길에서 어깨를 겹쳤을 때
이런 사고가 발생해요
동시에 내뱉는 욕설이며
들리지 않는 주먹질 같이
각자의 상상 속에서 벌이는 격투
넘어져 허공만 보며 웃고 있는 일상
글이라는 걸 쓴 적이 없어요
누군가 그걸 글이라고 불렀고
대답하지 않았어 비겁하게도
싸우긴 했지 다시 쓰라고 했을 때
오전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서 동시에 내려
뒤에 오는 버스에 동시에 타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착석하며
출발하는 풍경 속에서
모두가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생길 거라는 가정을
품고 있구나라고 여기니
기분이 묘했어요
변수를 늘 준비하는 삶
이상한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날들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여기니까 이러는 거고
이상하게 여겨도 이러고 싶으니까
이유를 깊이 생각한 적 없어요
이유가 중요한 적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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