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병동에서의 1박 2일

"집에 가고 싶어요."

by 백승권

이틀 전 밤 도로시는 토했다. 토사물이 이불 위로 쏟아졌다. 진회색이고 양이 많았다. 목감기와 중이염을 앓던 중이었다. 수시간 후 도로시는 다시 토했다. 비교적 투명한 수분이 많았다. 심상치 않았다. 새벽 세시 반.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거의 모든 정지신호를 어겼다. 멈출 수가 없었다. 15분 후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증세를 이야기하고 접수하고 담당의사를 만났다. 장염 증세라는 이야길 들었고 엑스레이 결과를 보자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수액을 맞아야 했다. 도로시에게는 첫 수액이었다. 간호원은 혈관을 찾지 못해 처음에 잘못 찔렀다고 했다. 팔을 바꿔 바늘을 다시 넣었다. 도로시에게는 첫 수액이었고 첫 수액을 위한 바늘이었다. 열세 살 때 여름 두 달 정도 입원했을 때의 기억이 빠르게 겹쳤다. 링거액을 맞기 위해 수없이 혈관을 찾아야 했고 그만큼 바늘이 들어가야 했다. 지금 도로시는 다섯 살. 다섯 살짜리가 엉덩이도 아니고 조그맣고 말랑한 손등을 바늘로 찔리고 있었다.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아팠겠지. 바늘을 고정시키기 위해 테이프로 손등과 손목을 감았다. 수액이 통과하는 길고 투명한 관이 길게 늘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손등에 꼽힌 바늘이 같이 움직이고 바늘을 꽂은 손등의 피부도 같이 들썩였을 것이다. 그 이물감, 불편함, 경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통증.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그전부터 도로시에게 우린 동화책과 유튜브로만 보던 병원놀이를 실전으로 체험하러 온 거라고 마구 떠들어댔다. 그리고 도로시가 돌 지나기 전 이불을 펄럭이며 파도놀이를 하다가 팔이 빠져서 (나와 아내의) 영혼이 이탈한 채 응급실로 향했던 이야길 들려줬다. 도로시는 듣고 까르르르 웃었다. 엑스레이 찍는 곳은 다른 곳보다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배와 가슴을 찍었다. 우주선에게 납치된 설정을 하며 또 마구 도로시에게 설명해줬다. 도로시는 듣고 웃었다. 수액을 한 시간 정도 맞고 퇴원하려 나서니 아침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쌀죽을 연하게 타서 물과 먹였다. 그리고 평소 먹는 (항생제가 포함된) 중이염 약도 먹였다. 정오 즈음 도로시는 배가 아프다더니 다시 토했다. 투명한 토사물과 밥알이 옷과 소파 위로 쏟아졌다. 양이 많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토했다. 먹은 물과 밥알이 몽땅 나오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거푸 양이 많았다.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입원 수속을 밟았다. 도로시 첫 입원. 오후 세시였다. 긴 고민 없이 1인실로 정했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도로시는 다시 토했다. 같은 결과물이 병실 바닥으로 쏟아졌다. 의사는 물을 비롯한 어떤 음식물도 당분간 먹이지 말라고 했다. 도로시는 힘이 없었다. 병실 침대에서 금세 지쳐 잠들었다. 손등에 꼽힌 긴 수액 호스가 덜렁거렸을 테니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아병동 입원 이후. 도로시는 더 이상 토하지 않았다. 다행이었지만 처음으로 물과 어떤 음식물도 먹이지 말아야 하는 상황은 고통과 초조함으로 자욱했다. 입원 시간대 간호원들과 의사, 교대 시간 후 간호사들과 의사, 회진 시간대의 교수와 간호원들이 바쁘게 드나들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과 계속 마주해야 하는 게 도로시에게는 엄청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다량의 구토와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하니 도로시는 극심한 피로감과 싸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소량의 배설물을 채취해 분석을 위해 제출해야 했지만 먹은 걸 다 뱉었고 더 이상 먹질 못하니 나올 게 있을 리 없었다. 입원 후 토는 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신호는 없었다. 도로시는 여기서 자야 하냐고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찍 잠들었다. 아내와 나는 바로 잘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도로시는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배꼽보다 반뼘 낮은 위치였다. 의사가 와서 체크했지만 원인은 확실하지 않았다. 도로시는 너무 아프다고 했다. 아내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어쩔 줄 몰라 두려운 표정으로 아이를 끌어안았고 간호사들이 바삐 오가며 의사를 찾을 때까지 흐느낌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로 데려가 재촉하니 오줌을 쌌다. 오줌을 다 싼 후 도로시는 바로 배가 안 아프다고 했다. 아마 낯선 곳에서 오줌을 오래 참아 방광이 팽창해 아픈 듯했다. 평소 유치원에서도 오줌을 오래 참아 우리를 걱정시키던 중이었다. 우리는 정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물으니 아내는 이때 장이 꼬였거나 장기에 큰 문제가 생긴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적 맹장을 앓은 적이 있어 기억이 겹친 듯했다.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두려움과 겹쳐질 경우 파장은 종잡을 수 없었다. 아내는 그때 감정의 제어 기능을 완전히 놓친 사람처럼 보였다. 같이 휩싸일 경우 결과를 걷잡을 수 없었기에 나라도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견뎌야 했다. 도로시는 물을 조금씩 먹었고 구토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된 후 쌀죽도 조금씩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마구 퍼줄 수는 없었다. 연거푸 구토를 했던 게 불과 지난밤과 새벽이어서 불안감에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난 좀 배고프더라도 재발해서는 안되니 최대한 조금씩 먹이기로 아내에게 당부했다. 모든 식사와 간식을 마련해서 하루 종일 챙겨주는 아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잠시라도 먹지 않으면 걱정했는데 이제 더 먹여서 탈 나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구획된 공간 안에서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체력을 고갈시키며 도로시를 돌봤다. 도로시의 목소리가 커지고 짜증이 늘고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다. 도로시는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도로시는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공간의 한계에 대한 불만을 성토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커다란 침대와 2명이 좁게 잘만한 간이침대처럼 펼친 소파를 오가며 온몸을 뒤틀고 소리 질렀다. 긴 수액 호스가 엉키거나 몸에 감겨 빠지지 않도록 애를 태우며 주의를 기울였지만 결국 한번 빠져 다시 갈아야 했다. 피가 조금 새어 나왔고 도로시는 고개를 돌렸다. 아내처럼, 도로시도 핏물과 핏자국을 바라보는 걸 꺼려했다. 입원 24시간이 지나자 도로시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종일 리모컨을 누르며 도로시가 볼만한 만화 프로그램을 찾았다. 도로시가 평소 거실 티브이로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이 병실 티브이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EBS와 투니버스를 빠르게 오가며 도로시의 흥미를 유도해야 했다. 그리고 우린 합의했다. 도로시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이제 집에 가도 될 거 같다고. 확인해보니 담당 교수님의 회진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도로시는 잠시 잠들기도 하고 다시 깨서 세상의 모든 이유를 만들어 짜증을 내기도 했다. 컨디션이 회복된 상황에서 자신이 병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묶여 기약 없이 지내야 할 거라고 여겨질 테니 심경을 알만도 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완전히 소진되었다. 도로시는 끊임없는 설득과 합의가 필요한 아이였다. 무엇보다 병원이라는 특수환경에서 도로시에게 위험을 초래할 상황을 간과할 수 없었다. 모든 위험 상황을 예민하게 통제해야 했다. 도로시는 지치지 않았다. 지친 건 우리였다.


병실을 오가는 거의 모든 간호원과 의사에게 퇴원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그들은 한결 같이 교수의 수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넘은 후 교수가 병실을 열고 들어왔다. 그전까지 도로시는 눈 앞의 모두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호소했고 간절함은 교수에게까지 전달된 것 같았다. 교수는 애절하게 귀가를 원하는 도로시에게 딱 한마디 했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 우리는 그 한마디 이후 짐을 싸고 병원비를 납부 후 퇴원했다. 도로시는 지금 잔다. 27시간이 마치 27일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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