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집을 떠나며

처음 산 집이었다

by 백승권

처음 산 집이었다. 모델하우스에 가서 계약했다. 구경만 하려고 했다. 정신 차리니 계좌번호를 적고 있었다. 아파트를 짓기까지 2년이 소요되었고 가까운 전세로 이사해 2년을 기다렸다. 아내는 임신을 했고 만삭일 때 지금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아내를 태우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신호를 몇 번 어겼다. 지상의 모든 공기를 으스러뜨리는 시간이 지난 후 도로시가 태어났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아내와 도로시는 집으로 왔다. 이후 집은 아내와 도로시의 거의 모든 사진에 등장했다. 갓 세상에 나온 도로시는 작고 여렸고 울음소리는 처량했다. 난 야근이 잦았고 도로시는 단 한번 낯선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때 표정은 날 도로시에게 완전히 밀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애초 팔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 했지만 더욱더 도로시를 가까이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세기가 바뀌며 도로시의 키와 몸무게도 달라지고 있었다. 밤과 낮의 구분이 흐릿해졌다가 도로시의 눈코입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집의 모든 중심은 도로시였다. 가느다란 외풍도 관리하고, 온도, 습도, 택배, TV, 벽에 거는 그림, 책, 장난감. 음식, 주말 일정, 축하할 일과 고민할 일, 병원, 출근 시간, 휴가 등 우리의 모든 중심은 도로시였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공간은 이 집이었다. 이 집에서 출발해서 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에서 짐을 싸고 이 집에서 다시 풀었다.


애초 벌판을 닦고 산을 깎아 만든 동네, 시간이 지나며 다른 아파트들이 생겨나고 터널이 생기고 더 긴 도로가 생기고 다양한 빌딩과 음식점, 쇼핑 타운이 들어섰다. 주소도 없던 동네는 뉴스에 오르내렸고 집값은 요동쳤다. 도로시는 착한 아랫집을 만나 매일 같이 쿵쾅거리며 거실과 온 방구석구석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린 자주 선물과 음식을 아랫집과 나눴다.


점점 커지는 도로시에게 지금보다 나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고민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더 넓은 면적의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미 도로시의 책, 장난감, 옷, 음식, 가구 등 도로시의 세계는 무한 확장되고 있었다. 하루를 앞두고 이 글을 쓴다. 이 곳에서 도로시는 40개월, 다섯 살이 되었다. 도로시는 우리의 첫 집인 이곳에서 먹고 자고 아프고 울었다. 콧물감기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도로시를 안고 119 구급차를 탔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아내는 기절에 이르며 털썩 주저앉았고 우린 응급실로 가다가 되돌아와 밤새 도로시의 숨을 살폈다. 이후 여행지에서도 도로시는 비슷한 일을 겪었고 이후에도 감기는 걸렸지만 도로시는 점점 스스로 잘 버텨주고 있었다. 지난 휴가 때, 이른 수영장 입수로 도착하자마자 감기에 걸린 일을 아직도 흥미로운 기억처럼 자주 이야기한다.


도로시는 이곳에서 모든 처음을 겪었다. 동물원에 가고 미술관에 가고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들 사이를 유모차를 타고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고 치킨 피자 고구마 딸기 치즈 초콜릿 아이스크림 국수를 먹고 먹다가 너무 좋아서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고 먹다가 너무 좋아서 오른쪽 왼쪽에 있던 나와 아내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부르르 떨기도 했다. 많이 어릴 적 자기 전 몇 시간을 서글프게 울기도 했지만 숨 넘어가게 웃으며 같이 웃게 한 적이 더 많았다. 요즘은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고 요즘은 사랑한다고 자주 달려와 껴안고 요즘은 사랑한다고 자주 다가와 뺨을 부빈다. 같이 달을 보여 이야기하고 숨을 곳도 없을 것 같은데 온갖 구석과 틈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며 특정 표정 흉내 움직임을 하면 떼구루루 구르며 자지러진다.


도로시는 이렇게 이곳에서 아기에서 아이가 되어 갔다. 새벽마다 깨어 잠자리를 거실 소파로 바꿔달라며 요청하고, 침이 꼴깍꼴깍 목에 넘어간다며 물을 달라고 하며 코가 조금 막힌다고 물을 축인 수건으로 코 주변을 두드려 달라고 한다. 수십 분 출처를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수십 분 알고 있는 모든 단어와 선율을 섞은 자작곡을 부르고 수십 분 읽을 줄 모르는 책을 넘기며 집중하고 수십 분 공룡 피겨 및 레고 블록들과 대화한다. 도로시는 이렇게 이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관리하게 되었다.


도로시가 뒤뚱거리며 걷고 사방으로 조금씩 뛰기 시작했을 즈음 막내 고모의 새로 이사한 아파트로 놀러 갔었다. 지금 집보다 훨씬 컸고 도로시는 그곳에서 동공이 커졌다. 더 넓은 거실, 더 큰 창문, 더 많은 방. 행동반경이 넓어지니 보폭과 속도도 그만큼 달라졌다. 그때 직감했다. 우리에겐 더 큰 집이 필요하다는 걸. 찾고 보고 만나고 날짜를 조율했다. 수십 개의 주말이 지나는 동안 도로시를 씻기고 밖에 나가고 들판을 뛰고 사진을 찍고 블록놀이를 했다. 책을 사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자는 도로시를 안아서 눕히고 이를 닦이고 손을 닦이고 내복을 갈아입히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꿈에 대한 이야길 들었다.


그리고 내일. 결혼 이후 네 번째, 도로시 탄생 이후 첫 이사를 한다. 이 곳의 모든 공간을 살아 움직이는 품처럼 느끼진 못한다. 다만 우리가 군더더기 없는 따스한 감정으로 하루와 한해를 채울 수 있도록 충분히 기능했다. 이게 가능하도록 아내가 모든 면과 선을 매만졌다. 내가 알던 거주의 정의를 확장했고 도로시에 최적화되도록 끊임없이 재정비했다. 새로운 집에서 우린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도로시는 더 자라고 우린 나이 들고 행복의 개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더 많은 대화들로 채워질 것이다. 도로시와 새로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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