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낙서들 사이에서 엄마를 생각했어

자비에 돌란 감독. 아이 킬드 마이 마더

by 백승권






언제 이 지옥 같은 집으로 돌아올래?


모든 낙서와 광고들 사이에서 엄마를 생각했어.


살면서 죽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속에 있는 너이다.


남자가 하늘인 줄 아는 놈들... 항상 지 맘대로 판단하지.



모든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다면 가장 복잡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다. 가장 많이 떠올리고 가장 오래 떠올리면서도 너무 느리게 쌓이거나 너무 뒤늦게 깨닫고 너무 빨리 퇴화하기도 한다. 가장 비효율적이면서도 가장 비경제적인 관계이자 가장 의무적인 관계이고 너무 피곤한 관계이기도 하다. 엄마 딸 엄마 아들 아빠 딸 아빠 아들 이렇게 쉽게 나뉠 수 있는데 영화가 영화인만큼 이 글에서는 엄마와 아들로 좁혀보자.


아들은 여자가 낳은 남자, 엄마는 남자를 낳은 여자, 엄마는 남자와 만나 남자를 낳은 여자 아들은 남자와 만난 여자가 낳은 남자. 모든 인간관계는 모순과 불균형, 무수한 변수와 예측불가의 사건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지만 엄마와 아들은 특히 더 그렇다. 성인 여럿의 결과물을 하나로 조립한 생명체가 아니기에 둘은 (어쩌면 신이 허락했을지도 모를) 숭고한 핏줄로 연결되었다는 믿음, 잉태와 출산이라는 인간으로서 한 여성의 온몸의 형태와 구조를 바꾸는 신화적 과정, 원하는 대로 자라길 바라는 극단적 기대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과 비난 등으로 얽혀 있다. 뼈와 살이 제대로 자라 직립을 하고 입을 떼며 성인과 같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부터 아들은 자신을 세상 유일한 자유 존재로 인정하고 지원하길 바라고 엄마는 감사 인사는 집어치우고 인간 대 인간으로 최소한의 대화 에티켓을 갖추거나 남들 보란 듯 우수하지 않아도 좋으니 남들한테 욕이나 먹지 않게 비슷하게 라도 사람 구실 해주길 바란다, 엄마는 나이 들고 아들은 커지면서 관계의 불균형은 더더욱 가파르게 바뀐다.


하루 종일 징징대고 윽박지르며 응석은 기본 지랄발광을 떠는 아들 후베르트(자비에 돌란), 후베르트가 어릴 적 이혼하고 계속 일을 하며 후베르트를 키우지만 쌍놈의 아들 새끼 하나 있는 게 맨날 엄마한테 윽박이나 지르고 욕이나 퍼붓고 오장육부를 뒤집는 말만 의도적으로 골라서 하니까 매일 매시간 속이 썩어 들어가는, 하지만 절대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엄마 샨탈(앤 도벌).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둘의 흔한 대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되려 기형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상식과 존중은 없고 공격과 상처만 난무하는 입과 입 사이. 후베르트는 보호자의 승인과 경제력이 반드시 필요한 철없는 학생이고 샨탈은 그런 아들을 아무 대가 없이 무조건 아끼고 사랑하고 받아주고 다치지 않게 이끌려는 엄마다. 세상 이런 불공평한 관계가 어딨나. 후베르트가 샨탈의 인생을 도륙하려고 지상으로 파견 나온 악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왜 지 엄마를 잡고 죽이지 못해 저 지랄인가. 사랑한다 안 한다 자기 맘대로 떠들고 울부짖고 마약에 취해 기분 좋으면 새벽에 자는 엄마 깨워서 할 말이 너무 많고 사랑해 이 방정을 떨다가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침실을 다 때려 부수고 엄마가 싫다 밉다 개지랄 떨고. 이게 사람새끼인가.


자비에 돌란 감독의 모든 영화를 섭렵하지는 않았지만, 마미, 단지 세상의 끝, 이번 아이 킬드 마이 마더만 봐도 그가 얼마나 엄마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골몰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감독의 개인사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아들의 입장으로서 엄마라는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무수한 각본을 쓰고 촬영을 했으며 연기를 지도했다. 죽기 전 우주 최고의 철이 들어서(사실은 이미 성숙하기도 한) 돌아온 게이 아들의 마지막 해후를 그린 단지 세상의 끝을 제외하면 마미와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아들 새끼 캐릭터는 진짜 악마도 저런 악마가 없다. 이런 아들을 용인하고 끝내 품고 화해를 포기하지 않는 헌신적인 엄마가 감독의 이상향인가. 헌신은 과연 세상 모든 엄마들의 필수 요소인가. 아니라면 자기 엄마에 대한 영상 편지일까. 게이 아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또는 그 반대? 문제 아들을 키우는 여성에 대한 세상의 비정한 시선과 비웃음, 쓸데없는 조언과 무능한 남편 등, 영화의 모든 요소는 후베르트의 엄마, 샨탈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모이게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무한의 헌신을 칭송하고 매번 휘청이는 모자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그리지만, 수혜자는 아들일 뿐 엄마에게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엄마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결국 미래에도 오직 같은 위치에서 같은 고난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만 현재의 칭송을 잃지 않을 거라는 무언의 틀로 결박한다. 결국 아들 인생의 강력한 성능을 갖춘 소모품. 모든 아들은 엄마를 죽이며 자란다.


keyword
이전 16화광기와 금기, 알렉산더 맥퀸의 빛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