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우울증약

by 백승권



오랫동안 크고 작은 수많은 과정 속에서
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들이

수없이 부정당했을 때
나를 바꾸면 되겠지

같은 희망이나 다짐들은 덧없다.

자의식 과잉, 자기 객관화 등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전제 아래
나의 일부를 재조정하거나 방향을 조절하거나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시작점을 자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나.나라는 구심점을
중력이 작용하고 영향받는 지점을

바꾸고 개선하려는 시도들은
지금으로서는 모조리 실패했다.

글을 써서 조금 나아진 적이 있었다.
수년 전 또는 십여 년 전 환경과 구성원은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깊이와 너비,

부피와 질량, 중압감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했을 때,
글쓰기가 처방전이 아닌 쿠션이나 베개 정도의
역할을 해준 적이 있다.

요즘 같은 일교차의 코트이거나.
하지만 늘 같은 강도와 빠르기의 총알만
지정된 부위에 관통하는 게 아니라서

방탄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아내와 도로시는 나보다 더 소중한 나의 전부지만
그들은 방패막이가 아니다. 그건 나여야지.
앞으로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닥에 서 있다면
버티고 서 있기만 해도 나는

어떤 지점에 다다랐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나는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은 채 부유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질식하고 있다)

아내와 어제 늦은 시간, 새로 나온

우울증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다는데

한번 먹어보면 어떨까.
아내는 주의 깊게 듣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재 처한 문제의 핵심은

달라진 환경과 사람들인데
그게 바뀌지 않고 약으로 잠시

보완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게 중장기적으로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어렵지 않겠냐고.
차라리 적극적으로 환경의 교체를

모색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아내는 자신의 이전 회사들에게 겪었던

고통과 우울감도 같이 이야기하며
내가 세상 유일한 지옥에 빠진 건 아닐 거라고

아마 그 지옥을 비슷하게 겪는 사람들은

이미 있었고 나는 어쩌다 다시

입장하게 된 거라고.
원하지 않았던 감정상태, 불안,

무기력증의 도가니 속으로.

지금의 상태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 모르겠다.
나는 움직이지만 주체는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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